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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돌을 놓아도 손을 안 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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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쯤이다. 어느 예선에서 양건 三단과 김철중 二단이 대국을 했다. 그런데 양三단이 바둑돌을 놓았다가 다시 들어냈다. 이를 본 김二단이 이의를 제기했다. "어떻게 된 거야. 착수했다 다시 들어낸 거 아냐." 양三단은 "손을 안 뗐는데요."라고 반론을 제기했다. 옥신각신하다가 계시원에게 물어봤다. 이때 계시원은 "두 눈으로 똑바로 봤는데 손을 안 뗐습니다."라고 선언적으로 말했다. 결국 대국은 계속됐고 바둑은 양三단이 이겼다.
최강 이창호 九단도 예전에는 바둑돌을 들고 반상으로 옮겼다 다시 드는 행위를 한 적이 있었다. 이를 두고 바둑은어로 '낚시질'이라고 하는데, 한번은 김판율 二단이 강력하게 항의하는 사태도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TV에서 보았겠지만 이九단은 돌을 조용히 제자리에 놓고 조심스럽게 손을 뗀다.
바둑에서 착수의 개념은 바둑판에 돌을 놓는 행위인가, 놓고서 손을 떼는 것까지인가? 이처럼 프로바둑에서도 착수를 했느니 안했느니 하는 문제가 종종 생긴다. 이럴 경우 착수의 정확한 개념은 바둑판 위에 돌을 놓고 손을 확실히 뗐을 때다. 따라서 그 순간적이고 미세한 차이를 어떻게 정확히 할 수는 없지만 기록자라든지 제3자가 증언을 한다면 그에 따라 판결이 나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대표적인 사건이 96년 K八단과 K四단간에 있었던 양자패 사건이다. K四단이 돌을 놓았다가 들어냈다. K八단은 손을 분명히 뗐다고 주장했고, K四단은 손을 떼지 않았다고 맞섰다. 문제는 누구도 그 판을 본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당사자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결국 심사위원회가 열렸다.
"양자가 합의를 하라. 만약 합의를 하지 못할 경우 대국을 속개할 수 없으므로 양자패다."
하지만 두 사람은 합의를 보지 못했고 결국 국내 바둑사상 전무후무한 양자패 사건이 발생했다.
어쨌든 낚시질은 좋지 못한 습관이다. 하지만 대국중 바둑돌을 들어 반상으로 놓았는데 느닷없이, 갑자기 다른 수가 보이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는 제아무리 프로라도 어쩔 수가 없다. 돌을 집어오는 수밖에. 판단은 신중하게, 하지만 행동은 빠르고 정확하게 하는 게 최선이다.
( 월간바둑 이성구 편집장 / stlee@baduk.or.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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