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은 한국의 대표적 고대소설에서 판소리로 정착된 작품이다. 춘향전은 한문본 한글본 이본이 백여 종이나 전할 정도로 재론이 필요없는 베스트셀러다. 필자는 조선은 바둑의 유토피아였다 주장한다. 바둑은 사농공상 반상의 구별이 없는 소통의 도락(道樂)이었다. 바둑은 양반사대부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예기이자 가난한 서민대중의 도락으로 기능했다.
바둑이 정사와 양반 사대부의 온갖 문집에 기록되어 있는 것은 필자의 칼럼을 통해 눈이 아프게 알아본 바 있다. 정조임금부터 당대의 모든 명사들의 삶속에 바둑이 녹아 있음을 우리는 알았다. 반면에 일반 서민 대중은 조금 등한시했다. 그러나 일반 서민 대중의 삶에도 바둑은 온전히 살아있다. 조선후기 국창 신재효는 아예 바둑의 노래를 창으로 불러 히트를 한 적도 있다. 바둑이 창 속에 들어 있다는 것에 반문을 할 사람이 있겠다.
정적인 바둑이 흥(興)과 동(動)의 창 속에 어떻게 들어 있느냐는 의문이겠다. 그러나 춘향전 속에 바둑은 살아있다. 그것도 춘향의 입을 통해서 말이다. 다음 자료는 1929년 잡지 별건곤 2월호에 나온 글이다. 기자는 남원을 여행하며 춘향전의 춘향을 그린다. 당시의 문장을 그대로 살려 소개한다.
(階下의 화단에는 백화가 常春인 듯 은은한 풍경소리 果是 仙境이라 할만하다. 다시 나온 동자의 뒤를 따라 화원을 도라 石階를 올나 나는 어느듯 어느 방안에 들어섯든 것이다.
실내 裝置는 의외에 수수하니 古畵 멧폭이 壁上에 걸니엿고 자개 體鏡과 문갑우에 고서 멧길이 싸혀 잇슬 뿐이다.
나는 혼자 그 자개 體鏡을 바다볼 때 春香이 李道令과 이별시에
『서방 업는 春香이가 세간하여 무엇하며 단장하여 쓸데 잇나』하고 面鏡體鏡 文房四友를 흘부서깨트리든 광경을 머리속에 그려보지 안을 수가 업섯다.
그리고 벽 우에서 백발 노인 사오인이 바둑 두고 안젓는 그림을 바라볼 때 春香母가 걸인사위 李道令을 다리고 獄門前에 당도하야
『아가 春香아! 아가 春香아!』불으니 春香이 소스라처 잠을 깨여
『게 뉘라 나를 찻나. 게 뉘라 나를 찾나. 箕山攧水別乾坤에 巢父許由가 나를 찾나. 商山四皓 녯노인이 바둑 두자 나를 찻나...』하든 그 가련한 정경도 눈압헤 떠올낫다.)
-별건곤
춘향모가 이몽룡을 대동하고 집을 나선 풍경이다. 춘향의 방안의 풍경이 여실하다. 문방사우는 깨져 있고 벽에는 바둑두는 네 노인의 그림 한점이 붙어 있다. 대를 이어 기녀로 살아오는 기방에 국화나 매화도가 아닌 사호도가 의외다. 그런데 옥방(獄房)을 방문한 모친과 이몽룡을 대하는 춘향의 육성이 그것을 자연스레 설명해 준다.
기산영수(箕山領水)는 고대의 전설상의 은자 허유를 말한다. 상산사호도 마찬가지다. 춘향은 은자 허유와 상산의 노인들을 거론하며 이몽룡의 출현을 반긴다. 춘향의 입으로 네 늙은이들이 바둑을 두자고 자기를 찾느냐 묻고 있다. 하수가 고수를 고대하듯 이몽룡을 그리던 춘향의 마음인 것이다. 춘향은 바둑을 이해하고 있었다. 춘향은 자신의 방에 바둑기물을 갖춰 놓고 바둑을 두었던 것이다. 이몽룡과도 두었을 것이다.
(절절 절씨구, 저절 절절 절씨구,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절절 절씨구, 우리 영감 어데 갔다. 기산 영수 별건곤에 소부 허유 따라갔나, 채석강 명월야에 이적선 따라갔나, 적벽강 추야월에 소동파 따라갔나. (중략) 어리 영감 어데를 가고, 날 찾을 줄 왜 모르는가. 아이고 아이고.)
-영산산대가
이 구절이 영산산대놀이에서는 다른 구절로 변화한 모습을 본다. 후대로 내려오며 바둑부분을 다른 구절로 바꾼 것이다. 별건곤의 기자는 춘향을 인간적으로 접근한다. 필자는 별건곤 기자의 춘향의 언급이 반갑다. 근래 전하는 춘향가 속에 빠져 있던 바둑의 언급을 본 탓이다. 기자는 춘향을 다음처럼 평가한다.
(세상에는 春香이를 엇더한 점을 아름답다 하며 엇더한 점을 장하다 하는지 알 수 업스나 나는 春香의 아름다운 것과 春香의 장한 것을 이와 가티 해석한다.
春香은 우리나라에서 누구보다도 제일 먼저 자유연애한 처녀이며 사랑을 위하여선 황금도 명예도 목숨까지도 草芥視한 것이 春香의 아름다운 것이며 그 시대의 그 불법한 제도와 끗끗내 반항하여 千幸萬苦를 一身에 바드며 杖下의 魂이 될지언정 百折에 一屈이 업슨 것이 춘향의 장한 것이다.
서양에 「쭈리엣트」는 情男 「로미오」를 위하여 催眠藥을 먹고 墓內에 가 누엇섯스나 春香이가 밧는 고초에 빅인다면 그 얼마나 용이한 일이며 따라서 「쭈리엣트」는 그 얼마나 소극적이엿스랴. 실로 春香은 고금동서를 통하여 아름다운 게집이며 장한 인물이로다. 그럿케 고대하든 李道令이 자기의 모-든 기대를 끈을 만치 초초한 걸인의 행색으로 차저왓것만 그는 조곰도 불쾌한 미련이 업섯슬 뿐만 안이라. 도리혀 걸걸한 모친의 말슴이 털끗만치라도 자기 남편을 박대할가 하여 그는 香丹이와 자기 모친에게 무어라 당부하엿나)
-별건곤
세상은 변한다. 역사도 변하며 흐른다. 심지어 책도 변하는 세상과 역사에서 조금씩 내용이 수정되고 바뀐다. 그것이 세상의 법칙이라해도 원본은 고쳐지면 안된다. 춘향가 속에도 바둑이 있다는 필자의 말을 웃어넘겨선 안된다. 아무것도 아닌것이 때로는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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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바모
성아낭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