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순장을 넘어

앞에서 본 기보를 남긴 작자 미상의 인물은 去十二 平七一 등의 부호로 자신이 본, 또는 두었던 바둑을 기록하고 이해하려 한 것이다.(아래 그림 참조) 이 기보는 이전의 문헌에 보이는 쌍립(雙立), 계가(計戶), 패(劫), 형세(局善), 포석(布列) 등과 함께 과거의 바둑을 구성할 수 있는 좋은 단서가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18세기라면 순장(?)을 두던 시대라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순장 바둑은 각종 문헌에 간헐적으로 보이는 장점(長點) 점(點) 순장(巡將) 배자(排子)가 전부다.

조선실록이나 각종 문헌들 그리고 이번 장서각 소장의 기보에 순장 바둑을 유출할 수 있는 단서가 없다. 18세기 문헌 중에 바둑의 실전 내용을 전하는 기록이 여러 점 있다. 그러나 동엄집(정환직) 향은집(이장찬)에 순장이란 말은 기적적으로 보일 뿐이다. 그 외 유력한 문헌들 속에 조선 바둑과 중국 바둑의 형식을 고민한 기록은 거의 없다.
필자는 조선에 중국식 바둑과 순장식 바둑이 혼용되고 있었다고 본다. 조선이 특별하게 순장식 바둑만을 둔 것이 아니라 중국식 바둑도 그에 못지않게 유행하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 조선후기 순청에서 도성 안팎의 야간 순찰을 총괄하던 장수로 문, 무반의 정3품 이상에서 임명되던 관직.

실제로 조선왕조실록 곳곳에 도성 수비군을 불시에 점검하는 차원에서 군왕이 순장을 임명하던 기록이 보인다. 정3품 이상의 관직은 포도대장, 목사 등 외청의 수장이자 내청의 고위 관료인만큼, 군문에서 순장은 오늘날의 사단장급의 장수다. 순장의 단초가된 자료 하나가 있다.

조선의 바둑을 순장식과 사배자식 등 억지로 구분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조선은 순장식과 사배자식의 바둑을 모두 두었다. 순장식 바둑이 특별히 더 두어진 것은 논외다.

그렇다면 도대체 순장바둑은 어디서 온 나온 말일까?

옆의 사진은 충청도 공주에 사는 김동선(64)의 집에 내려오는 문서로 함풍 10(1860)년에 충청도 관찰사가 발부한 것으로 보인다. 행서로 쓰인 이글의 한자 원문은 이렇다.

-兵曹爲相考事 道內公州居 嘉善 金富億 巡將差下爲有置

上來察任之意 訪邑良中知委施行. 宜富向事.

合行移關 請照拾施行 修至關者. 右關 忠淸道 關察使 咸豊十年 九月 日.

내용은 병조에서 공주에 사는 김부억을 순장으로 임명하여 관내(충청도)에 파견한다 하니 해당, 읍, 군, 현은 상부의 지시에 따라 차질 없이 맞을 준비를 하라는 것이다. 순장이 도성 순찰은 물론 지방군에까지 파견되고 있었음을 말해 주는 기록이다. 

바둑을 기록한 조선의 개인 문집속에 장점(將點) 점(點) 등이 나온다. 이 말은 오늘날의 화점을 말하는 것으로 조선후기 바로 이 화점을 순장으로 인식했던 듯 하다. 배자(配子)를 전 조선에 배치한 순장이라 하며 바둑을 전투의 개념으로 흥미롭게 즐겼다는 반증인 것이다.

순장이란 직책이 조선후기의 직책이고 보면 일본의 바둑이 들어온 20세기 초 순장바둑이란 말은 불식간에 나온 말이다. 물론 이 말의 의미에 고민이나 연구가 있을 턱이 없다.

순장바둑이란 말은 조선이 망하는 순간 물밀 듯 들어온 일본의 강압적 문화가 만든 조악(?)한 말이다.  순장바둑의 변할수 없는 증거자료로 등장하는 기보들도 상한연대가 겨우 1930년대의 것들이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18-19세기 조선의 기보(碁譜)를 보았다. 그것도 수십 점에 달한다. 필자는 위의 기보 외에도 한 종택(宗宅)에 전해오는 기보 한점을 더 보았다. 사배자식 기보다. 그렇다. 조선바둑은 중국 일본에 고립되어 있지 않았다. 조선은 중국 일본과 거의 같은 바둑을 두었다. 우리는 순장바둑을 넘어 보다 깊고 먼 한국바둑사를 찾아야 한다.

(필자는 [월간바둑] 8월호부터 지면을 얻어 묻혀 있는 한국바둑사 2천년의 비하인드를 하나씩 들춰볼 생각입니다. 일독을 바랍니다. 이 코너도 계속됩니다. 이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