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바둑이란 말이 있다. 해방이후의 바둑사를 지칭하는 말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1954년 조남철이 한국기원을 설립한 이후를 이르는 말이다. 현대바둑을 연구했다는 연구자들이 손꼽아 기리는 조남철의 한국기원 설립과 오늘날의 한국바둑의 발전사는 불가분의 관계다. 조남철 없는 현대바둑 없고, 현대바둑 없는 조남철 없다는 인식이다.

한국의 현대바둑은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한국기원의 설립에 뿌리를 두고 연구를 진행하기에 다른 이론은 끼어들 공간이 없다. 간혹 일제시대를 살핀 연구자들이 있어 간헐적으로 그 시대의 바둑이 언급이 되는 한가한 실정이다. 예를 들면 1930년 경성기원이 우리나라 최초의 기원이라던지 1913년에 출간된 '기보'가 최초의 바둑책이라던지 하는 것들이다.

이런 기초 위에 어떤  학자는 1970년 충암학원이 바둑특별반을 설치한 것이 이 땅의 최초의 바둑교실이다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일제시대가 한국사가 아니라면 이런 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일제시대도 우리 역사이고 보면 이런 연구들은 무색해진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1930년 전에도 기원은 있었고 바둑을 교습해주는 교실도 있었다. 그것을 당시의 신문들이 기록하고 있기에 재론도 필요없다. 1925년 12월 30일자 동아일보다.

(大和町 圍碁敎授所에서 總督府官吏가 賭博, 퇴청한 때부터 등청하기까지 밤을 새워 발각될까 두려워서 표면은 조희돈으로//熟睡中인 本町署, 아는지 모르는지 소식이 막연...)

대화정에 위기교수소가 있다고 한다. 대화정은 서울 필동을 말한다. 단성사와 일본 헌병대 앞을 지나면 바로 대화정이었다. 
'위기교수소'는 무엇을 하는 곳인가. 바둑을 두고 가르치고 배우는 곳이다. 그곳에 총독부관원들이 수시로 모여 도박 등으로 시간을 보내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여 바둑을 두는 곳은 기원(棋院)이다. 1930년 신문에 있는 경성기원의 기사를 보고 경성기원이 최초의 기원이고 충암학원의 특별활동반 설치가 최초의 바둑교실이란 등의 주장은 참으로 고민과 성의가 부족한 말이다.

필자가 살핀 1900년에서 1940년에 이르는 40년간의 한국바둑은 오늘날보다 인기가 훨씬 높았다. 당시의 언론인 동아일보, 중외일보, 매일신문, 시대일보, 별건곤, 삼천리, 개벽 등에 나타나는 바둑기록의 빈도수가 엄청나다. 1925년에서 30년사이에만 조선 전역에서 백여 개의 바둑대회가 열렸다. 동아일보는 모든 지국(支局)별로 바둑대회를 열었고 그 내용을 고스란히 지면에 반영하고 있다.  

바둑대회는 전국적이다. 이리, 보성, 순천, 밀양, 평양, 원산, 횡성 등 수십 곳에서 지역 유력자들의 후원을 얻어 대회가 열리고 바둑대회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동아일보는 1937년에 '전조선위기대회'를 발족시킨다. 당시 동아일보(37년7월10일)는 '금일 본사 강당에 각지의 고수들이 총집합하여 신기묘수의 열전을 전개'한다는 보도를 내고 있다.

1921년 창간하여 30호도 내지 못하고 종간한 지방지 '금남일보'는 충청도 보령의 한 면에서 있었던 바둑대회의 조각광고가 있다. 전국의 모든 군읍은 물론 한미한 시골의 면에서까지 바둑대회가 열리던 시절이 오늘날의 한국바둑계의 형편보다 수준이 낮다고 본다면 그 사람은 맹아다.

6.25전쟁이 끝나고 발족한 한국기원은 바로 이런 토양 위에 뿌리를 내렸던 나무다. 토양이 기름지고 기후와 환경이 더없이 좋았기에 한국기원의 발전과 한국바둑의 융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한국기원과 몇몇 기사들의 탁월한 공이 있기는 했지만 꼭 그것만으로 된 것은 아니다.

한국바둑의 저변에는 바둑에 더없는 애정을 주던 바둑팬들이 있었다. 필자의 약소한 식견으로 20세기 초반은  전국민의 반 이상이 바둑팬이었던 듯하다. 그 위에서 출발한 현대바둑 80년은 현대화 고급화로 치장은 되었는지는 몰라도, 찰지고 보드랍던 바둑팬층은 모두 잃어버린 뿌리가 마른 고목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