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황기경은 고대바둑의 전부를 수록하고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함에도 한중일 삼국에 원문을 해독( 혼자 해 놓으신 분 있다면 몰라도)한 자가 없다. 중국은 간자체로 바꾸어 놓기는 했지만 깊은 연구가 없었다. 혹시 연구가 있었는데 필자가 놓치고 있었다면 죄송하다.

기경은 전쟁에 임하는 자세를 바둑에 비교하여 설명한다. 힘이 약한 자는 힘을 길러 전쟁에 대비를 하고 약한 상대는 기습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한다는 수단을 강조한다. 강한 상대를 맞아서는 더욱 나의 준비를 튼실히 하고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치국(治國)의 요체는 바둑에서도 다르지 않다고 한다. 기경은 바둑의 덕목이 병법의 그것이기에 치열한 재미와  무궁한 묘리까지 있어 잠깐 소비향략적인 놀이들과는 근본이 다르다고 한다. 아취가 있는 놀이다(戱中之雅) 말한다. 


특히 양무제의 바둑담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주목된다. 양무제는 달마대사의 중국정착을 도울 정도로 불교에 심취했던 사람이다. 양무제의 바둑을 대하는 자세는 진지하기 그지없다. 양무제 바둑담은 돈황기경 외에도 보이는 것으로 돈황기경이 중층으로 증거를 하기에 더욱 가치가 있다 하겠다.

바둑세계의 금과옥조인 위기십결은 원저자로 '왕적신'과  '유중보' 가 지목되곤 하다가 20세기에 와서는 송사열전에 등장하는 '반신수'로 교정되었다. 그러나 기경은 이 사실에 의문을 제기한다.
기경은 기결(碁訣)이 있다 하면서 탐즉다패(貪則多敗)가 있다고 한다. 부득탐승(不得貪勝)이다. 기경은 자뢰변경(自牢邊境)이라 한다. 변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나의 말을 돌아보라는 거다. 입계의완(入界宜緩)이다.  기경은 세고기수(勢苦己輸)라 한다. 세력이 약할 때는 조심하라는 세고취화(勢苦取和)다. 기경은 이외에도 7가지 기결을 나열한다. 기리를 따르면 손해는 없다는 어리불손(於理不損)과 선가침릉(宣可侵凌) 등이 그것이다.

탐부득승은 위기십결의 1결이다. 부득탐승의 최초의 원형의 모습이 돈황기경에 '탐즉다패'로 등장한다. 이 탐즉다패가 송나라시대에 와 탐부득승(貪不得勝)으로, 명청대에 부득탐승으로 고정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문 문언문 백화문으로 변하며 인간친화적인, 변하는 한문의 변화겠다.

기경은 바둑에는 결(訣)과 함께 3대 악도 있다고 한다. 상대의 손을 따라 두는 것, 끊으려는 데 잇지 않는 것, 싸우지 않을 곳에서 싸우는 것이 그것이라는  것이다. 기경은 반상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에도 관심을 갖는다. 양패의 처리와 귀에서 나타나는 곡사(曲四)형태가 그것이다(바둑판 위에서 발생하는 양패 또는 삼패나 귀곡사는 현대바둑에서도 반상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규정을 두어 처리하고 있다).

오늘날까지 세계바둑계는 13도, 17도를 거친 바둑판이 수당 교체기를 통해 19도 바둑판으로 정착되었다는 점을  통설로 하고 있다. 기경은 당 시대에 19도 바둑을 말한다. 바둑판이 주천도수(周天道數)를 따라 361도라 특정한다. 한대(漢代)에 중국 바둑유물로  15도, 17도 바둑판이 발굴된다. 기경의 시대 바로 앞 시대에 15도, 17도 바둑이 두어 졌음을 말한다.


지난 2006년 경주 분황사지에서 15도 전돌바둑판이 발굴되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이 바둑판이 세계 최고의 15도 바둑판이라며 호들갑(?)을 떨던  기억이  무색하지만 중국문물과학성 자료에는 1970년 중국 하남성 한대 무덤에서 나온 15도 바둑판을 기록한다. 1971년 한대 장군무덤에서 나온 17도 바둑판과는 다르다. 경주분황사지에서 발굴된 15도 바둑판은 나름 중요한 유물이지만 세계 최고 최초 운운하던 말들은 해프닝이라 할 수 있다. 자료의 축적과 정리부재가 가져온 시행착오라 하겠다.

어쨌든 기경은 19도 바둑이 북주시대에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었음을 증거한다. 주천상수를 운운할 정도라면 오호십육국시대 전체에 19도 바둑이 통행됐다고 본다. 이로써 19도 바둑의 보급기를 수당 교체기에서 조금 앞당겨야 하지 않나 싶다. 기경은 계가법에 대해서도 말하고 있다. 고대 바둑에 대해 바둑계가 궁금해 하던 질문이기에 관심이 더욱 크다.

기경은 바둑을 두는 방법을 말하면서 착수를 한 후에는 돌을 옮길 수 없고 무르고 다시 둘 수 없다고 한다. 그것이 바둑의 도이자 군자의 도라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계가법을 설명하는데 바둑이 끝나면 반상을 모두 채우고 난 후 반상의 돌수가 많은 사람이 이긴다.(碁有停道及兩溢者 子多爲勝) 말한다. 정도(停道)는 바둑이 끝난 상태를 말하고 양일(兩溢)은 반상에 돌을 채우는 것을 말한다. 동수의 흑백 바둑을 들고 바둑을 두어 종국에 누가 반상에 돌을 많이 올려 놓았느냐를 따지는 것이 기경 당시의 계가법인 것이다. 오늘날의 응씨룰과 비슷한 방식이다. 중국에는 정자(停子) 정로(停路) 정허(停虛) 등 여러 방식의 계가법이 있었다. 

기경은 흑백돌이 서로 상극하여 네 귀를 차지하고 두는 이유와 반상에서 나타나는 패의 처리, 곡사의 문제 등을 언급한다. 직사궁 오궁 육궁 등의 모습을 설명하기기도 한다. 이들의 변화 모습이 병법의 용간술과 매우 흡사하다며 새삼 병법과 바둑을 논하기도 한다.
기경에는 장기에 대한 언급도 있다. 한국장기계가 애를 태우며 찾는 과제 하나가 있는데 그것이 장기의 고대의 기록이다. 아마도 돈황기경이 장기 기록의 최고라 생각된다. 어쨌든 다음편에 기경원문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