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병법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최고의 기록은 돈황기경이다. 돈황기경은 북주(557-581)시대의 저작물로 당시 불경을 필사하던 양가죽에 손으로 쓴 필사본으로 1980년대 돈황기경으로 정식 이름지어진 것이다. 북주시대는 위촉오 삼국시대의 혼란 끝에 발생한 오호십육국시대의 마지막 왕조다.
북주(北周)의 외척이자 승상이었던 양견이 자신의 외손자였던 북주의 마지막 황제 정제로부터 선양을 받아 수나라를 세우고 남조인 진(陣)을 치고 전국을 통일하게 된다. 오호십육국시대는 전국시대의 재판으로 중원의 상황은 혼돈이었다. 전쟁으로 날을 새우고 전쟁으로 밤을 맞는 시대에 만들어진 돈황기경이 적시하는 바둑은 병법(兵法)이다.
돈황기경은 병법의 요체가 진실을 보여주지 않고 허실을 보여주어 상대를 착각에 빠트리는 것이라며 바둑도 그런 식으로 두면 된다 말한다. 병법에서 동남을 고려하며 서북을 치는 성동격서가 그렇다고 한다. 진이 호(전국시대의 나라들)를 치듯 제갈량의 신출귀몰한 교란전술이 바둑판 위에서 적용된다고 한다.
이 시대 중원의 놀이문화는 바둑이 트랜드였다. 바둑을 두다 노모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두던 바둑을 마치고 곡을 했다는 완적이나 백만대군과 전쟁을 벌이면서 진영에서 바둑을 두었다는 사안의 고사 등이 모두 이 시대에 나온다. 중원의 바둑은 한반도에서도 두어졌다. 고구려 바둑고수 도림을 초빙하여 바둑으로 날밤을 새웠다는 백제의 왕 개로의 에피소드도 이때 생겨난 것이다.
돈황기경은 바둑을 전쟁에 임하는 자세와 연관지어 설명한다.
힘이 약한 자는 힘을 길러 전쟁을 대비하고 준비가 없을 때 닥친 전쟁은 약자일수록 기습전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바둑도 전쟁하는 방법과 하등 다르지 않다고 한다. 돈황기경은 바둑판에서 병법의 덕목을 찾을 수 있다고 하며 그 덕목과 함께 무궁한 재미까지 있기에 잠깐 소비하고 버리는 향락과는 근본이 다르다 한다.
바둑은 한마디로 아취가 있는 놀이라(戱中之雅)는 것이다. 이로부터 중국바둑은 격조가 있는 놀이이자 병법과 연관지어 많은 논의가 나오게 된다. 이 인식은 한반도도 예외가 아니다. 정조는 바둑의 덕목은 아취와 병법이라 말한다.
나는 바둑을 잘 모른다. 그러나 바둑이 예부터 문방아기(文房雅技)임을 잘 안다. 문인들이 곁에 두고 심심파적을 삼으면 도움이 된다. (자료1. 홍제전서)
(자료1.) 홍제전서 165권. 문방아기를 말하고 있다.
정조는 조선실록과 승정원일기 홍제전서 등에 곧잘 바둑을 정치에 비교하며 설명하고 있다. 그가 바둑을 문인들이 고상하게 생각하는 기예라 말하는 것도 새삼스런 게 아니다. 정조는 1787년 새로 간행한 병학지남의 서문에 바둑과 병법을 비교한 절묘한 글을 남기기도 한다. 병학지남은 척계광의 저술로 조선 무인들의 필독서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애독서였다.
군대에 법이 있는 것은 바둑에 기보가 있는 것과 같다. 이 병서를 읽는 자들은 바둑의 고수가 기보가 바둑의 전부로 알지 않은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 이것을 안다면 곧 병법을 안다 할 것이다. (자료2. 홍제전서)
(자료2) 홍제전서 183권. 병학지남 서문
돈황기경은 바둑에 10결(訣)과 함께 3대 악이 있다고 한다. 상대의 손을 따라 두는 것. 끊자고 하는데 잇지 않는 것. 싸우지 않을 곳에서 싸우는 것이라 한다. 돈황기경은 반상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난제에도 관심을 갖는다. 양패의 처리와 귀에서 발생하는 곡사(曲四)형태 등이다.
다음편에 돈황기경이 바둑에 준 영향을 한번 더 언급하고 기경 전체 국역을 올려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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