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균은 한반도에 들어온 바둑의 시초를 인도로 보았다. 바둑이 중국에서 발생하여 한반도로 직접 들어온 것이 아니라 인도에서 남중국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왔다고 본 것이다. 한국바둑사에 바둑의 해외기원설을 논리화한 사람은 최남선이다. 물론 그 전에 유본학 등이 언급을 한 적이 있지만 그저 들은 풍월(?)이고 본격적인 논지를 전개한 사람이 최남선이다. 최남선의 언급도, 바둑의 기원설도 중국학자들인 '마원중' '혁단평' 등의 설을 인용한 것에 불과하지만 최남선 나름의 바둑연구는 허투루 넘길 수 없다.

김옥균의 '한반도 바둑인식'을 최남선이 계승(?)하고 있다는 것이 놀랍다. 김옥균과 최남선 사이에는 오세창이 있다. 그들은 한 세대를 사이에 둔 선후배다. 이들 세 사람의 바둑인식도 놀랍다. 세 사람 모두 바둑마니아였다. 김옥균은 바둑에 살고 바둑에 죽었다 할 정도로 바둑광이었고 오세창 최남선은 모두 바둑책을 출간할 정도로 애기가였다.

최남선은 '조선상식' 속에 '위기'라는 타이틀을 달아 바둑사를 전개한다. 중세와 근대, 그리고 근대와 현대라는 역사의 큰 매듭의 자리에서 한국바둑의 역사를 가늠했던 최남선의 정리는 아무리 칭찬해도 부족하지 않다.

김옥균을 바둑과 연관지어 말하는 글들을 많이 본다. 몸통과 가지들이 따로 놀며 출전과 근거도 미약한 내용이 너무 많다. 일례로 김옥균이 본인방가의 분란을 중재했다는 등의 설은 너무도 사실과 동떨어진 것이다.  김옥균이 조선의 바둑을 근대화와 접촉을 시킨 공이 있는 것은 맞다. 미완의 혁명가 김옥균 그 사람이 바둑계 안에서 온전한 모습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바둑인들의 분발이  필요하다.

*위기(圍棋)

棋는 一에 奕이라고 하여 支那 古來의 說에는 堯가 그 아들 '단주'를 교훈하기 위해 창작하였다 하고, 또는 舜이 아들 '상균'을 위해 만든 것이라 하니 이 까닭으로 요와 순을 혁제(奕帝)라 하기도 한다. 근래의 학자들 중에 '마원중' '혁단평' 등이 바둑은 고대 인도의 산물이라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여하간에 진역(우리나라)에 棋가 支那에서 전래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데 연대와 경로는 밝힐 수 없다. (신당서) 고구려전에 위기 투호를 즐긴다'好圍棋投壺之嬉'라 하고 (후주서) 백제전에 투호 저포 바둑이 유행했고 그중에서 바둑이 더욱 성행했다'有投壺樗捕等雜戱然尤尙奕碁라 하고 (구당서)에 또 개원25년에 신라로 사신을 보낼 때 바둑을 잘두는 사람이 많다하여 병부에서 양계응을 발탁하여 보냈다'其人多善奕碁因今善碁人率府兵曺楊季鷹爲副玆'하니 삼국에 걸쳐 棋道가 성했음을 알 것이다.

위기가 정치에 이용된 경우는 支那에 많지만 우리나라에서도 삼국 쟁패시에 첩보작전에 이용된 경우가 많았다. 특히 신라의 대당외교에 棋를 통한 이면공작에 활용되고 사적 친선관계에 유용하게 사용되기도 한다.

- 최남선, 조선상식 중에서.

이 글은 최남선의 '조선상식'의 인용이다. 최남선은 지나(중국) 근역(우리나라) 등을 한사코 고수할 만큼 나름의 역사관에 자긍심이 있던 사람이다. 바둑이란 우리 고유의 용어가 있음에도 한사코 碁, 圍棋, 棋를 고집하기도 한다. 최남선은 요즘으로 따지면 '이어령' 비슷한 학자로 박학다식을 학자의 지선으로 알던 사람이다. 최남선은 자신이 소장하고 있던 많은 고자료를 주변학자들에게 보여 주지 않기로도 유명했다.

학자라면 자료는 자신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요즘처럼 서고에서 찾아 면전에 보여주어도 별 감흥이 없는 학문풍토로 따지면 이해가 가기도 한다. 최남선은 김옥균의 바둑의 인도기원설에 부정적이다. 다만 한반도에 바둑이 중국에서 직접 들어온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한다. 최남선의 생각은 한반도 바둑의 기록들과 인물들을 찾아내고 또다른 반상게임인 장기의 연구에서 얻어낸 것이기에 가치가 있다.

필자가 볼 때 21세기까지 한국바둑사는 최남선이 1940년초에 발표한 원고 20매 정도의 이 리포트가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최남선 이후 바둑사를 언급한 거의 모든 필자들의 언급이 이 리포트를 반복 재탕하고 있을 뿐이다. 최남선은 장기란 말의 상한연대를 조선중기로 특정한다. '상희' '상기' '상반' 등 장기를 뜻하는 용어들 속에서 '장기'란 말이 조선중기와 비슷한 시대 일본에서 동시에 출현했다는 것이다.

최남선의 이 말은 棋를 놓고 바둑과 장기를 주도하는 입장의 사람들이 바둑이니 장기니 하며 아전인수의 해석을 하는 풍토에 일침을 가하는 것이다. 실례로 '예성강곡'으로 전해지는 고려여인과 하두강의 에피소드를 '장기'로 치부하는 행태 등은 시정되어야 한다. 최남선은 김옥균이 말한 바둑의 인도 기원설은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최남선은 바둑을 거론한 김옥균의 언급을 보았던 것은 분명하다.

일본 바둑의 영향을 받다

국권침탈에 이어 합방을 시도한 일본의 영향에 바둑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시대 조선바둑에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 사람이 다카베 도헤이(高部道平 1882-1951)다. 다카베는 일본 전문기사로 1910년 '조선과 만주' 1월호에 바둑의 유례를 집필할 정도로 학구적인 사람으로 진고개에 있던 기원 일가회(一家會)에서 당대 조선 최고의 고수였던 유풍기(豊碁) (주 兪씨와 劉씨로 혼동 되어 나타난다)를 선에 꺾어 경성의 재일본인들을 즐겁게 한다. 다카베는 가리가네 준이찌로부터 유풍기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다. 가리가네는 유풍기가 백남규보다 두점이 강하다 말한바 있다.

가리가네는 1896년 10월 백남규와 대국을 했고 그 기록이 독립신문에 대서 특필 된 바 있다. 다카베 도헤이와 가리가네준이찌는  1926년 일본바둑의 본산이던 방원사를 탈퇴하여 새로운 바둑단체를 만들기도 했던 혁신적인 사람들이었다.  일본 기록에 포착된 조선의 고수군은 유풍기와 백남규다. 그러나 이 당시를 회고하는 조선의 노고수들의 전언은 김만수 백남규를 특정하고 있다. 김만수가 문제인 것이다.  김만수는 구한말의 전설적인 고수다. 그러나 그의 행적은 미스터리다. 김만수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가) 대원군이 그의 재주를 아껴 의성군수를 시켜 주었다.

나) 고종 앞에서 김만수와 백남규가 어전바둑을 두었다.

다) 황해도 고수가 가리가네에게 패하고 "녹일! 녹일(김만수)!" 외치고 죽었다.

라) 김만수가 혼자 일본으로 가 본인방수영과 대국을 하여 2대2로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다.


김만수의 전설은 한마디로 실체가 없다. 필자가 백방으로 탐문한 김만수의 신빙할 수 있는 기록 자료는  없었다. 의성군수 선생안, 대원군자료, 고종어전 대국은 물론 황해도 고수가 "녹일, 녹일" 했다는 말은 대구 고수 서종우에게서도 오버랩 되는 등 근거가 없다. 필자는 김만수를 탐문하며 동시대 일본 바둑에 자존심을 상한 조선바둑이 민들어낸 신화는 아닌지 생각했다. 동시대 기록에 한두 번 나타났다 사라진 유풍기와 이명동인(異名同人)은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다. 김만수에 대해서는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다.

이 시대 조선바둑의 중심은 기력으로는 백남규 윤병구 서병오 민중식이고 후원자로는 의친왕 이강공과 한상룡 등이다. 일본인으로는 한성신문 주필과 대동신문을 창간했던 '기구치 겐조' 등의 활동이 돋보인다. 기구치 겐조는 명성왕후를 살해한 일본 자객단의 일원으로 활동한 극우적 인물로 바둑 민속 등에 취미를 갖고 적극적으로 취미활동을 하면서 일본바둑의 조선 진출에 큰 힘을 준다. 기구치게조는 진고개 일본 상인들의 회장으로 일본 전문기사 다카베도헤이(高部道平)를 조선으로 끌어들인 막후의 인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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