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새로운 기보 두 점
2. 바둑은 기세다
3. 조선사람에게 기보는 어떤 의미인가
4. 정확한 현현기경 한 편 없는 국내
5. 일본에 있는 조선 기보.
6. 승부와 문화 양날개로 날아야 한다
7.  인사말씀(바둑 글을 접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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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조선사람에게 기보는 어떤 의미인가

서유구(徐有榘 1764-1845)는 은퇴 후 임천(林川)에 묻혀 살고 싶다며 산수간에 작은 집을 짓고 자신이 거처할 방에는 1천여 권의 책과 잠시 마음의 청량을 줄 거문고 바둑판이면 족하겠다 했다. 서유구는 아버지 서호수의 영향을 받아 실사구시를 지향하던 사람으로 자신의 서가(書架)에는 기보(碁譜) 몇 권 꽂혀 있는 것도 좋다 했다.

조선사람 중에 기보를 언급한 사람들은 많다. 세조 선조 정조 등 군왕은 물론 김상헌 최한기 이덕무 정약용 박지원 남공철 김정희 조희룡 등 그 면면이 화려하다. 조선의 지식인들이 성리학에 몰두하여 여타의 것에는 관심 없을 듯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허균(許均 1560-1618)의 '닭 키우는 방법'을 한번 보시라.

동산 가운데 조그만 집을 짓고 그 아래에 삼태기 하나를 달아 놓아 닭이 위에 올라가 자도록 하고 혹은 담장 안에 감실(龕)을 짓고 풀로 둥지를 묶어 닭이 올라가 알을 품게 한다. 동산 곁에 수수를 한 이랑 심어 그늘을 만들어 주고 가을이면 수수를 수확하여 닭에게 먹이면 쉽게 크고 살도 찐다. <한정록>

70년대 농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던 모습으로 허균이 살던 시대의 닭 키우기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 4백년전 사람 허균이 말한 닭 키우는 방법이 불과 얼마전까지 살아 있었다는 말이다. 허균이 닭 키우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나 이영수(李榮秀 1830~?)가 자신의 일기에 '기보' 만드는 법을 기록한 것은 비슷한 경우다. 조선의 식자들은 닭을 키워 살림에 보태는 것이나 '기보'를 만들어 기력을 키우는 것에도 관심을 쏟았다.

가는 철사로 19로 망(網)을 만들어 먹을 먹여 종이 위에 찍고 책자로 만들어 세필 대롱으로 점을 찍어  평상거입(平上去入: 기보용지의 사방 여백)에 기보를 기록한다. 큰 책 작은 책으로 만들어 휴대용으로 만들 수 도 있다. <이영수일기>

고서경매장에 나온 중국의 기보 '구주도'.  바둑의 내용을 하도낙서라는 이론으로 풀이하고 있다. 이 책의 소유자는 경상병마절도사를 역임한 사람이다.


'닭 키우기'가 실용이라면 '기보'생산도  실용이랄 수 있다. 생산에 물상이나 정신적 가치를 따질 필요는 없다고 본다. 이영수가 말한 기보 작성법에서 보듯 조선사회에 기보의 생산과 보급의 모습도 엿볼 수 있겠다. 정약용 이덕무가 친구에게 기보를 선물하고 유본학 조희룡이 말한 너도 나도 기보를 들고 다니며 기보 보기를 일삼는다 말이 그것들을 뒷받침한다. 서가를 마련하고 그 책장을 가득 채우기를 바랐던 조선 식자들은 책장에 꽂을 책의 종류와 배열에도 방식이 있다며  '기보'를 수(手)로 분류하여 동에서 세번째(東三) 자리가 좋다고 한다. 홍법구주(九疇)에서 따온 것으로 기보의 제목이 구주도(九疇圖)가 있을 정도다.

오늘날 전하는 조선 기보는 수십 종에 달하는데 여러 종이 '하도'  또는 '낙서'를 부제목으로 사용한다. 바둑의 출발점을 하도낙서로 본 시대의 분위기 탓일 것이다. 바둑을 하도낙서로 본 인식은 2000년초 한국민속자료원에서 완성한 '한국구비문학자료'에 문경과 밀양지방의 '하도바둑과 낙서바둑 일화'가 등장하는 것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조선의 식자들의 독서열과 장서수집열은 알아줄만하다. 유만주(1755-1788)는 조선의 장서 수집열기가 엄청나다 했다. 조선은 시시각각 중국에서 출간된 책들을 들여왔다. 경사류 외에 선화화보, 도화견문서 등의 미술류는 물론 선기무고 도화천보. 구주도 등 기보를 수입하여 재발간 또는 필사하여 활용했다.

조선 사람들에게 '기보'는 금기서화를 통한 한층 원숙한 정신적 사람이 되기 위한 방편이었다. 기보는 기력을 증진하기 위한 중요한 수단임과 동시에 바둑을 한갓 도락에 머물러 있지 않고 아기(雅技)나 예기(藝技)로의 승화를 지향하는 단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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