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기사(碁師)의 노래
2 도사쿠 바다 너머와 악수를 하다
3 진정한 바둑마니아
4 오가사와라에서 만난 김옥균
5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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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오로 창사10주년기념 특집칼럼
4편. 오가사와라에서 만난 김옥균

필자는 오래전부터 김옥균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 김옥균을 존경하거나 흠모해서가 아니라 피끓는 반골기질로 역사에 정면으로 맞섰던 개성과 함께 그가 참으로 바둑을 좋아한 마니아였다는 것이  관심의 이유였다. 김옥균의 흔적을 찾는 데 5년여의 시간과 대학노트 8권 분량의 필기가 필요했다. 그가 등장하는 거의 모든 '지면'과 자료를 요약정리했다. 어떤 책은 한권 필사도 마다치 않았다. 소설 3권 분량(미발표)으로 압축정리를 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8월 중순 일본에서 아오이 겐타로(劍太郞, 56) 씨가 충청도 '아산' 도고온천으로 필자를 찾아왔다. 겐타로 씨는 바둑마니아면서 동시에 김옥균 마니아로 필자와 통하는 점이 있었다. 겐타로 씨는 필자가 발굴, 소장하고 있는 김옥균 간찰 두 통을 보고 싶어 했고 필자는 그 소망(?)을 들어 주었다. 오가사와라행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필자는 김옥균을 궁금해 하며 언제가는 꼭 한번 그 섬에 가서 한번 돌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바람은 너무도 먼 바람(?)이었다. 겐타로 씨는 일본으로 돌아가며 필자를 초청해 주었다. 얼마간의 여비까지 부담해 주어 10월말경 염치불구 겐타로 씨를 찾았다. 창사 10주년을 맞아 홈페이지 개편에 정신 없던 '오로' 에서도 기꺼히 여비를 보태주었다.

오가사와라는 행정구역상 '도쿄'에 속하지만 도쿄항에서 1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절해고도다. 교통편은 경시청이 주로 이용하는 선편이 주 1회뿐인 오지 중의 오지라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배편을 이용하여 27시간을 항해하여 만 20시간을 머물다 돌아 나오는 같은 배를 이용하여 돌아왔다. 형편상이나 시간상 일주일을 그곳에 머물 수는 없었다. 그 시간을 이용하여 몇 곳을 정신 없이 돌아보며 사진 찍고, 한 중학교에 들러 김옥균이 수록된 교과서를 한권 얻어오는 데 만족해야 했다.

감회가 있었다. 환영처럼 지난 5년여를 끌어안고 있었던 사람, 그 사람이 가장 절망의 처지에 놓여져 있던 장소에 와서 그를 추억할 수 있었다는 것에 위안을 얻었다. 살아서 만날 수는 없어도 시공간의 교차점에 서서 손을 내어 악수를 했다는 것은 행복이었다. 다만 시간이 너무도 아쉬웠다.

그러나 오랜 시간 필자가 기울였던 김옥균의 자료와 겐타로 씨에게 얻은 자료는 나름 김옥균의 오가사와라 기행(紀行)을 충실하게 반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필자는 이미 알려진 스토리나 그것마저 밑도 끝도 없는 출처불명에 근거를 대고 김옥균과 그의 바둑을 말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기록이 있고 증언이 있고 그것을 제 삼자가 고증할 수 있는 에피소드만이 힘을 갖는다고 믿는다. 어디서 본 듯한 글, 무엇인가를 베낀 듯한 글이 설득력을 갖을 수는 없다. 더구나 그 글이 '근거' 없는 유언을 기초로 쓰여졌다면 말해 무엇하랴.

(김옥균 거주지 안내판 자료. 오가사와라 공립학교 교재 속에도 들어 있다.)

김옥균스토리는 일본과 바둑을 묻는 칼럼에 이어 다음과 같은 차례로 올리겠다.

김옥균스토리 
1. 두산만과 김옥균
2.김옥균의 아들 '야마토'
3. 와다(和田延次郞) 김옥균의 죽엄을 지키다
4. 사진자료 감상


김옥균은 일본 야쿠자의 원조격인 '두산만'의 지대한 관심을 받았다. 그의 주선으로 만난 일본여자와 '야마토'라는 아들을 낳기도 한다. '와다'는 오가사와라에서 서당을 열고 바둑을 가르킨 김옥균의 충복이자 양아들이다. 와다는 중국에서 홍종우의 총탄에 비명에 간 김옥균의 시체를 지킨 상주(?)이기도 하다. 와다는 '슈에이'의 충실한 조력자기도 했다.

'두산만'의 등장과 일본에서 낳은 아들 '야마토'는 김옥균의 정체성에 큰 혼동을 준다. 오가사와라 출신인 '와다'의 등장과 그로 인해 일본바둑의 프로기사가 배출되는 일도 극적이다. 어쨌든 오가사와라 방문을 통해 필자는 바둑과 관련된 새로운 김옥균스토리가 만들어지기를 원한다. 감상을 극도로 자제했기에 다소 건조할 듯하다. 그 점을 십분 이해하고 읽어주길 바란다.

김옥균은 바둑마니아였다. 바둑을 좋아한 것은 물론 바둑이 담아내고 있는 문화적 철학적 측면에 깊은 통찰을 갖고 있던 사람이다. 본인방 '슈에이'가 김옥균을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존경하고 따른 이유가 이것이다. 슈에이는 당대의 바둑세계의 1인자로 접대바둑(?)의 자리에서 만난 김옥균의 깊은 바둑철학에 매료돼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김옥균은 바둑사가(史家)라 할 수 있다. 조선바둑의 근원을 '서역'으로 보고 그 생각을 고증하려한 논문까지 쓴 사람이다.

본인방 '슈에이'는 망명정객 김옥균을 떠나 바둑사가, 바둑철학자로 김옥균을 존경하고 대접했다. '슈에이'는 김옥균을 통해 바둑의 새로운 페러다임을 알았다. '슈에이'는 김옥균을 통해 새로운 바둑의 세계를 접했다. 승부와 전통의 존중 속에 흠뻑 빠져 살던 '슈에이'는 김옥균을 통해 바둑의 철학과 문화의 일단을 엿보고  미친 듯 김옥균에 몰두한다. 

인간이 완전할 수는 없다. 슈에이도 그랬다. 슈에이는 일인자가 모르는 세계가 있다는 것에 절망했다. 그것도 일인자의 전유물(?)인 바둑 속에 그것이 있다는 것을 안 '슈에이'는 김옥균에 자신의 전부를 걸다시피 한다. 슈에이는 김옥균에게서 기세(碁勢)를 보았다. 김옥균을 통해 바둑은 승부 외의 그 무엇이란 철학과 문화도 알았다. 그 공과는 고스란히 일본바둑의 과실로 남았음은 물론이다. 이것이 일본바둑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