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안(此岸)과 피안(彼岸)에는 사이(際)가 있다. 차안에서 피안을 넘기 위해서는 지남(指月之指)과 도구(載道之具)가 필요한데 불가에서는 그것을 삼학(三學)이라 한다. 계정혜(戒定慧) 삼학에 선문(定卽禪門)이 있는데 우리가 말하는 바로 그 선(禪)이다.

선은 복잡다난하고 어려운 듯하지만 결국은 '선가어록'에서 말하는 '독을 끊고 영원한 소멸(絶毒永便消滅)'로 귀결하는 것이다. '삼매각관(三昧覺觀)'인 것이다. 삼매를 통해 불심이 본래 청정함을 알고 몸과 마음의 평안을 찾아 마음의 동요와 색(色)의 유혹을 떨쳐내란 의미다.

인간은 색에 관심이 많다. 인간이기에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소리를 믿는다. 보이는 것만 믿고, 들리는 것을 듣고 또 그것만을 진리로 알고 잡으려 하기에 좌절과 절망을 한다. 부처는 이것을 딱하게 여겨 색은 없다(色卽是空) 하셨다.

불가에서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천여 개의 공안(公案)이 필요하다 말한다. 고기를 잡기 위해 망태기가 필요하고, 강을 건너기 위해 배가 필요하듯 개성충만한 인간들의 깨달음을 위해 다양한 공안 화두(話頭)가 만들어졌다. 뜰 앞의 잣나무나, 똥친 막대기, 끽다거, 백척간두의 진일보 등이 그것들이다. 뜰 앞의 잣나무와 똥친 막대기가 공안일 수 있다면 '바둑'은 어떤가. 바둑 또한 훌룡한 공안화두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상당에서 한 스님이 물었다.

이 일을 논하자면 마치 두 사람이 바둑을 두는 것 같으니 학인이 방장실로 와 한 수를 청할까요?

애초에 진 바둑을 가지고 잘 두었다 잘못 두었다 하랴.

더 가까이 가는 길은 없을까요?

스님이 주장자를 내리치며 말했다.

이 한수를 어찌할거냐?

그렇다면 흑과 백이 이미 나뉘기 전은 어떻습니까?

한 수면 넉넉하다.

(경허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 중이던 한암스님의 친필 원고)

수많은 공안언어 중 출전의 주인공은 선본(善本, 1035-1109) 동(董)스님이다. 스님은 원조종본(圓照宗本, 1020-1099)스님의 제자로 중국 '서광사'에(서산 서광사와 바둑으로 인연이 되고 있다) 주석하며 '운문종'의 종맥을 이은 분이다.

스승과 제자의 문답이 자못 치열하다 못해 불꽃을 튀긴다. 선(禪)은 불립문자(不立文字)라 했으니 두 사람의 말을 옮겨 놓는 즉시 허망(兩人談方記虛忘)이기 십상이다. 말로 설명할 수 없고 문자로 기록할 수 없는 것이 선이니 위의 문답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그렇다고 믿으면서도 필자는 흑과 백이 놓이기 전(黑與白分前)을 운운하는 말에서 '조주'와 '투자'의 문답을 떠올린다. '크게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온다면 어쩝니까'를 묻는 조주에게 투자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답한다. '그걸 밤길에서 묻노? 밝은 날에 묻거라(不許夜行投明須到)' 전광석화가 따로 없다. 질문의 요지가 분명하기에 답도 명쾌한 것이다. 그렇다. 마음이 온 자리는 빈곳이고 물건이 온 자리는 태허(太虛)다. 참으로 좋은 스승에 좋은 제자다.

필자는 얼마전에 각수삼매(覺手三昧)라는 기발(?)한 말을 들었다. 바둑과 절집은 안어울리는 듯하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반상에서 삼매의 경지를 꿈꾼다하여 그것이 결례는 아닐것이다. 세상의 모든길이 한 길로 통한다면 우리는 그 길에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디 반야나무는

선과 염불이 접을 했을 때 잘 자라지

바둑알이 바둑판 위에 안정치 못한 것은

마음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本是般若木 禪與念條生 對作動碁局 中心亦不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