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편. 기보는 무엇을 담고 있나

민백흥 '기보'는 2백여 가지의 묘수풀이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현현기경' '선기묘수' '적정록' 등 중국기보와 출처미상의 것들도 몇 점 있다. 특히 민백흥 기보는 표지 4면에 '하도낙서'라 표기하고 강조하는 내용은 '적정록(適精錄)'의 영향을 받은 반증이다.

적정록은 중일간의 고대바둑 교류사의 미스터리가 담긴 책이다. 명 가정4년(1525) 새롭게 편집 출간된 책으로 '현현기경'을 능가함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다. 적정록은 '삼진가임국(三辰加臨局)'이라는 도표 속에 하도낙서와 바둑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를 입체적으로 보여주기도 한다. 민백흥이 기보를 만들며 하도낙서를 운운한 것도 일정부분 적정록의 영향으로 본다. 민백흥도 적정록을 보았던 것이다.

일본의 본인방 도책(道策)이 발견한 묘수로 알려진 상당수의 수법이 사실은 적정록이 출전이었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적정록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내에는 단 한번도 출판이 시도된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따지고보면 국내에 완전한 '현현기경'도 없는 형편이니 논하는 것이 쑥쓰럽다.
 

  (경매장에 나온 기보 속페이지)

위의 자료는 필자가 경매장에서 본 '기보'의 한 페이지다. 1800년대 후반의 것으로 바닷가에 살던 무명씨의 작품으로 기보 끝에 자작 시 한편이 들어 있기도 하다. 이 기보도 '현현기경' '관자보'와 출처 불명의 묘수풀이가 어지럽게 혼재되어 있다. 이 자료만 해도 최남선의 조선광문회판 '기보'를 수십년 훌쩍 뛰어넘는다. 이들 기보 외에도 국내에는 20여 종의 '기보'가 더 있다. 아래의 것들이다.

사실 국내에 현존하는 기보는 많다. 그동안 필자가 파악한 기보만도 20여 종 되는데 고서경매장에서 본 기보로 미루어볼 때 이보다 훨씬 많은 기보들이 있다고 믿어진다. 아래는 필자가 파악한 국내 기보다.

1. 해남기보 (전남 해남군 해남읍 조방훈 소장)
2. 민백흥기보 (수원시 조성만 소장)
3. 무명씨기보 (경매장 낙찰)
4. 장서각기보 (3종, 장서각 소장)
5. 장서각기보 (2종, 상희 장서각 소장)
6. 이동근기보 (충남 부여군 은산면 박선생 소장)
7. 최남선기보 (조선광문회출판 국내 수십 권 산재)
8. 오세창기보 (경기도 이천시 윤형조 소장)
9. 신정기보 (국내 다수 산재) 
10. 선기무고 (수원시 조성만 소장)
11. 기감요설 (대전중구 박세창 소장)

다시 한번 묻고 싶다.

한국바둑사 찾기가 아무런 실익이 없는 일이라 해도 한 사람의 비전문가에 불과한 필자에게 이렇게 방치하듯 맡겨(?) 놓아도 되는 것인가.  

(기보 소장자 조성만님과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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