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민백흥은 누구인가
민백흥의 삶은 풍운아 자체다. 벼슬자리도 자못 화려하다. 과거로 출사를 하여 지평, 승지, 충청도관찰사 등 그야말로 고속승진에 청요직이다. 지방외직 중에 강원도 충청도를 거쳐 노른자 중의 노른자라는 평안도관찰사도 역임한다. 그런데 가는 곳마다 탄핵상소가 뒤를 따른다. 평안도관찰사 시절에 받은 탄핵상소다. 상소자는 이원(李遠)이다.
어리석고 무지하고 품행이 좋지 않아 그 부모도 버린 자식입니다. 가족이 아들이나 동생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사대부들도 하류로 보고 상종하지 않은 지 오래고 친구라고는 무반이나 역관 그리고 시정잡배들입니다. 잘하는 것은 세도에 붙어 모리하는 짓과 의주 동래의 상인들의 물주로 치부하는 것뿐입니다. 여러차례 외직을 맡아 재물을 탐한 것이 엄청납니다. 민씨가 망하는 것은 그로부터 일겁니다.
(平安監司閔百興 蚩蠢無知 鄙悖無行 父兄處以化外 不比子弟之數 士夫視以下流 恥爲儕友之 平日所業 只是依附貴勢, 干囑牟利之事 半生所與遊者 武弁象鞮市井無賴之類而已 萊灣商儈之輩 皆推以市販物主 及爲蔭仕 屢典州郡, 貪饕無厭 贓案歷歷 勳宰甲第 價踰千金 而不顧所處 必買乃已 其兄故相切責而不聽 女壻資裝 至用銀器 閔氏之亡 自百興始者) -영조실록 1770년기록.
탄핵의 내용이 노골적이고 거칠다. 내용이 부모자식간을 이간질하는 낯뜨거운 지경에 이른다. 조선시대 탄핵은 대부분 이렇다. 임금에게 상대를 공박하며 놈의 고기를 씹고 싶다는 내용도 있으니 이 정도는 약과다. 우리는 탄핵전(戰)이 나중에 사화(死禍)로 변하는 일을 종종 역사에서 보곤 한다. 탄핵을 하려면 확실히 한다는 조선선비들의 일종의 강기(?)로 보이지만 글쎄다. 조선실록에 80여 회 등장하는 민백흥의 기록은 탄핵과 재임용 그리고 재탄핵의 점철이다. 영조는 진퇴를 반복하는 민백흥을 거듭 쓴다. 관찰사 승지 대사간 판서 등 한결같은 요직이다.
민백흥은 호연한 기상의 소유자였던 듯하다. 가는 곳마다 끝없는 시기와 질투를 몰고다닌다. 그러나 민백흥은 꿋꿋하다. 강원도에서는 지역의 인재인 안석경(安錫璥)을 조정에 천거하기도 한다. 안석경은 산림처사를 자처한 사람으로 지방에 은거하여 한시 3백 수를 남긴 당시대의 문인이다. 민백흥은 한 이름 없는 무명인에게 간찰을 보낸다.
잘 내려가셨다니 마음이 놓입니다. 집안식구들도 모두 편안하시지요. 이별하고 보니 학유정에서 바둑두며 담소하던 때가 삼삼합니다. 매사를 바둑 두듯 하면 탈이 없다던 말이 새삼 경구가 됩니다. 포치하고 진퇴하고 조종하는 바둑판 위에서 세상의 조짐을 볼 수 있다는 말은 바둑을 조금 아는 나도 감탄합니다. 세상사 고수가 바둑 두듯 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만 줄입니다.
(向着歸鄕爲安到 美眷均安各安好 送別後 鶴遊亭 對局談笑而尙有愁愁也 每事對碁言無脫 卽心句發相 布置 進退 調從 變化 六甲機微 余感嘆耶 六甲以問乎 善碁同着手 然不好乎 爲想思 枯不備禮.)
(장서각보관 민백흥간찰 중 한통 담배를 보내준 이생원에게 감사를 하고 있다)
수신자 미상인 민백흥의 간찰은 바둑에 대한 이해를 보여준다. 바둑을 두며 교류를 하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늘 하던 말이 있다. 바둑을 두듯 세상일을 하면 탈이 없다는 말이 그것이다. 친구는 바둑을 잘 이해하면 세상의 현실과 미래도 내다볼 수 있다고 한다. 바둑마니아였던 민백흥은 이 말에 감탄을 한다. 바둑마니아 민백흥의 곁에는 그보다 더 바둑에 빠졌던 친구가 있었던 것이다.
승지. 관찰사. 대사간. 판서 등 요직만을 전전한 사람이 민백흥이다. [기론]을 손수 쓰고 '기보'를 출판할 정도로 바둑에 대해서도 최고(?)를 자처해도 무방했던 사람이 바둑에 빗대어 세상을 논박하는 무명씨의 말에 과연 그렇다며 장단을 쳐주고 있다. 실록의 기록과는 전혀 동떨어진 모습이다. 영조는 민백흥을 인재로 평가 했다. 일처리가 쓸만하다는 것이다. 민백흥은 여흥민씨로 영조가 관심을 두는 가문의 일족이기는 했다지만 개인적 능력이 뒷받침 안되었다면 힘든 일일 터이다.
(서문 말미에 민백흥이 썼다는 기록이 보인다.)
(기보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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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익는향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