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과 조선의 부조화 (1)

男操女碁를 평가하다

중국에서 소외 지식인이라면 반드시 시를 알고 지을 줄 알아야 한다. 평측과 운을 고른다거나 대구를 생각하는 사이에 균형 잡힌 정신을 얻게 된다고 믿는 것이 중국의 지식인이었다.
중국의 지식인은 시를 알았기에 벼슬 자리에 나갔다. 두보 백거이 이백 등이 모두 관원이었다. 도연명도 마찬가지다.

조선이 명청에 가졌던 사상적 인식을 잘 보여 주는 사람이 이중환이다. 이중환은 중국의 지식인들의  인식과 맥이 닿아 있는 조선의 선비였다. 조선의 사대부도 시를 알고 쓰기를 좋아했다.

  이중환의 시대는 중국에 공양학파의 시대였다. 공양(公羊)은 말할 것 없이 공자의 저술인 춘추의 한 장이다. 공양장은 미언대의(微言大義)를 존중한다. 사실에 대한 깊은 통찰과 비판을 통해 역사를 해석하는 것이다.

청은 명나라를 무너트리고 세운 나라다. 조선과는 병자호란으로 거친 악연을 맺은 나라기도 하다. 이중환은 조선 당 시대의 사대부들이 갖고 있던 고루하고 답답한 관념에 회의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들과 같은 교감을 한 부분이 있으니 그것은 명나라에 대한 감상적인 사대 의식이다.

조선은 명이 망한 1백 년 후에도 궁안에 사당을 지어 놓고 명나라 황제 신종과 임진왜란 때 출병을 온 명나라 장수들의 제사를 은밀하게 지내고 있었다. 청이 알면 외교 문제가 될 것이 뻔한 데도 그런 것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명의 관학은 주자학이다. 송대에 완성된 주자학은 중국의 정통 학문이자 조선의 정통 학문이었다. 하찮은 글귀에도 큰 뜻이 있다고 믿는 미언대의도 결국은 주자학의 산물이다. 조선이 겉으로 청에 굴종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고개를 든것도 바로 미언의 산물인 의리론이었다.

  이중환은 택리지 충청도 길에서 명군 대장 양호의 기사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 평양에서 서울 7백 리 길을 하룻밤 사이에 돌파한 명군은 해생, 파괴 등 장수에게 철기군 4천에 말을 타는 원숭이 부대를 편성하여 소사하에 매복을 시키고 직산에서 올라오는 왜군을 들이치니 왜군이 혼비백산 달아났다. 원숭이 부대의 활약에 왜군은 총 한번 제대로 쏘지 못하고 퇴각을 했다.

이 기록은 양호군의 승전보다. 양호는 명군의 책임자로 이여송보다도 비중이 있던 자이다. 그가 선조실록에 보면 선조를 채근하는 대목이 나온다. 양호가 선조를 만날 때마다 종이와 붓을 들고 따라다니며 무엇인가를 열심히 적는 사관을 발견 하고 호기심이 발동하여 그것을 보고자 한다.

사관은 결사적으로 거부를 한다. 사초는 왕도 볼 수 없던 것이 조선의 법이다. 양호는 힘으로 사관을 밀치고 사초를 보고는 한숨을 쉰다. 사초에는 별 의미 없는 왕의 시시콜콜한 일상이 적혀 있던 것이다. 양호는 선조에게 한마디 한다.

 -이런 일에나 매달리니 나라가 이리된 것이요.

 양호군에는 원숭이를 훈련시켜 선봉에 세우고 싸우는 전술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날의 군견부대와 유사한 것이겠으니 실효성은 탁월했던 듯하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 명군의 전투는 제한적이다. 그런데도 조선은 왜란이 끝난 1백 년 후에도 명나라에 고마움을 잊지 않는다.

  택리지는 우리 나라의 형국이 노인형이라 말한다. 중국을 향하여 사대하는 모양이라는 것이다.

실사구시를 견지하며 현실의 부조리에 날카롭게 대항하던 이중환조차도 명에 대한 인식은 이 정도이다. 이중환은 한술 더 떠 명나라 사당에 제사 지내는 인물 중에 이여송이 빠진 것을 못마땅해 한다. 당대의 비상했던 인물 이중환의 생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졸렬하고 유치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중환의 잘못이 아니다. 당대의  사조가 그랬던 것이다.

명은 문화주의 국가임은 분명하다. 중국 역사상 명에 와서야 비로서 문명국가라는 말이 실감난다.

명은 화려했고 여유가 있었다. 그러나 명은 철저한 정보국가이기도 했다. 문화존명을 슬로건으로 내세우면서도 안으로는 동창(東窓)의 정보 정치로 세상을 옭아 매던 나라인 것이다.

동창은 황족과 고급 관료를 감시한다. 책임자는 모두 환관이다. 명의 대장군 정화도 환관이었다. 동창으로 황족과 관료의 감시를 하며, 서창을 두어 지방 관료와 백성들을 다시 감시한다.

  이들의 폐해는 상상을 초월했다. 명은 이것으로도 만족을 못한다. 내밀창을 두어 동창과 서창을 다시 감시한 것이다. 책임자는 모두 환관임은 물론이다.

미언대의라는 주자학의 절정을 구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중 삼중 감시라는 악독한 정보 정치를 자행하던 명도 2백여 년 만에 그들이 그렇게 멸시하던 북쪽 오랑캐 여진족에 망했다. 허망한 일이다. 그런데도 그 나라가 망한 지 1백여 년이 지난 조선의 선비 이중환은 명나라를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그렇다. 이것이 조선의 한계이고 조선 엘리트들의 한계였다. 이중환은 충청 기행을 하면서 기자조선을 말하고 기자로 인해 중원과 가까워진 조선을 자랑스러워 하기도 했다. 이유는 중국의 역사존중 사상이다. 역사라는 말도 사실은 명나라의 한 관원이 처음했던 말이다.

성리학과 중화주의에 잠들었던 조선을 들이쳐 잠을 깨웠던 청나라와 세상의 문명이 변하는 순간에도 조선의 북학론은 기본적인 화의의식에서 한 발짝도 변하지 않고 있었다. 조선은 병자호란에 대한 적개심과 만주족에 대한 야만 감정을 청나라에 갖고 있었다.

명청이 이미 한 나라가 되어 있는 순간에도 조선은 존명모화와 배청(排淸) 사상에서 헤매고 있었다. 조선이 세상의 변화와 보조를 맞추지 못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 배청 사상이다. 우리보다 못한 만주족에게 당했다는 피해 의식은 조선을 마음이 병든 나라로 외부에 비추게 했다.

청이 조선을 정벌하고도 군사 한명 남기지 않고 철수를 한 자신감도 이 병통을 엿본 탓이었다. 북벌론을 부르짖으면서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선비들의 공리공론을 눈치챈 청은 조선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청은 조선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한다. 조선이 북벌론이니 뭐니 하며 현실성 없는 구두탄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청은 조선에 대한 백여 권의 연구서를 편찬한다. 청은 조선보다 더 조선을 알고 있었다. 청나라 학자들은 조선의 역사 문화 사회 지리는 물론 심지어 의술 잡학 분야까지 세세하게 연구를 한다.

청의 학자 왕석기는 '소방호재여지총람'이라는 책에 35종의 조선 관계 연구서를 집대성하여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책의 제목만 보아도 청의 조선에 대한 관심을 알  수 있다.

'조선소기' '고려 풍속기' '조선풍속기' '동국명승기' '조선잡술' '고려잡술' '조선수도' '조선국수' 등 위의 책들은 내용까지도 전한다.

이것 외에 제목만 전하는 조선 관계 서적은 1천여 종에 이른다. 이들 책 중에는 평양이나 제물포 여행기 등도 있다. 평양과 제물포를 여행한 청의 어떤 상인이 쓴 풍물기다.

  청의 이런 적극적 조선에 대한 관심에 비해 조선은 겨우 영조 때에 와서야 담헌 홍대용이 중국을 몇번 다녀온 후 충격을 받고 배울 것은 배우고 버릴 것은 버려야 한다는 사단취장(捨短取長)을 주장하다 주변에서 항청지조가 부족하다며 배척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