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일기는 조선실록에 버금가는 기록물로 인조 연간으로부터 고종에 이르는 280년 간의 조선실록 전체 분량의 세 배가 넘는 방대한 기록물이다. 이 방대한 기록물은 현재 국사편찬위원회의 판독 과정과 일부 국역 작업이 진행 중이다. 국역 작업은 전체 분량의 5퍼센트 정도에 그칠 정도로 지지부진한 상태다.

승정원일기는 조선 정부의 센터 격인 왕과 보좌기구인 승정원의 기록물로 조선실록을 능가하는 정보의 바다로 역사, 정치, 문화, 민속 등 학계의 연림(硏林)이자 신천지다. 필자는 조선실록 속에 있는 바둑기록 380여 건을 검토하여 '한국바둑사'를 출간했다.  

필자는 과문하여 조선실록 속의 바둑을 궁리하다 승정원일기 속에 조선실록 못지 않은 바둑의 기록이 있음을 알고 경악(?)했다. 물론 필자만의 경악일 터이다. 승정원일기 속의 바둑기록은 필자가 확인한 것만 280여 건이다. 인조, 효종, 숙종, 영조, 정조 ,순조, 고종 등 7대 국왕의 지근에서 일어났던 정치 생활사에 수백 건의 바둑 기록이 존재한다는 것은 분명 흥미로운 일이다.

바둑은 국왕이 운영하는 국정의 과정에 여러가지 모습으로 등장한다. 정치, 외교 그리고 왕과 신하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문학과 역사 등의 논쟁의 장에 주제로 또는 사례와 비유로 거론된다. 바둑이 전쟁과 병법 그리고 난국에 직면한 국정의 극복과정에 비교되고 참고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진관체제'나' 제승방략'이란 양대 국방전략을 갖고 있던 조선의 국방정책에 바둑이 비교사례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바둑이 인재를 발탁하고 교육을 시켜 활용하는 인재 선발의 전범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도통군자(道通君子)가 되기 위한 학문을 하는 방법과 문리(文理) 과정에 바둑의 속성이 꾀어 맞추어지는 대목까지 실로 다양하다.

조선의 바둑은 당대 제일의 기예이자 선풍적 유행의 놀이였다. 바둑의 인기는 조선 5백년 내내 식을 줄을 몰랐다.

조선은 바둑과 축국(蹴鞠)의 나라였다. 방(房)에서는 바둑이, 땅에서는 축국이 방과 땅을 울렸었다. 바둑의 고수들을 이용하여 외교전에 사용한 경우는 셀 수가 없다. 궁안에서 숙직을 하며 관원과 내시들이 내기바둑을 두며 송사까지 벌인 경우가 있는가 하면 내의원 의원들이 밤중에 바둑을 두다 파직된 경우는 사건도 아니다. 어떤 궁녀는 왕에게 사안(謝安)을 거론하며 식견을 자랑하고 어떤 신하는 문산(問山)에 위리안치되어 있는 고산 윤선도를 구명하는 상소문을 바둑관으로 갈무리하여 현종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한다.

인조 3년 9월 26일.

入小學則知事親之方, 入大學, 則習新民之道, 此誠學者規模也。 上曰, 爲仁不熟, 反不如他道之有成, 此言, 何如? 鳴吉曰, 此言觀來, 似有可疑, 而蓋勸其成熟也。 有如不有博奕之語, 言雖抑揚, 而實勸學者矣。 大槪此言, 勸其成熟, 然爲仁不成, 豈不如他道乎.

인조 6년 5월 26일.

上〉曰, 其腹心如此, 則不足畏也。 且自古跋扈者, 必鍊武講武, 而今毛也, 只博奕云, 何以如此? 忠信曰, 蓋疎於兵革, 雖軍器, 亦只以白杖受點, 其不知兵, 可知也。 上曰, 雖然猶勝於我國之兵矣。 忠信曰, 彼則收合待令, 我兵則空虛, 安能敵乎.

인조 21년 3월 27일.

又啓曰, 卽刻兩使聚會一處, 覓入碁局之意, 敢啓。 傳曰, 知道。

현종 13년 1월 5일.

又啓曰, 卽者上勅使, 覓入碁子, 故分付入給之意, 敢啓。傳曰, 知道. 청혹설(청칙사)의 요구.

숙종 13년12월 16일.

姜鋧曰, 謝安, 聞捷報之來, 而圍棋如舊者, 出於矯情, 雖有鎭物之量, 論以正道, 則似非矣。 金萬吉曰, 謝安之擧其子玄者, 知其能也。 不用其婿國寶者, 知其惡也。 其心皆出於爲國, 可尙矣

숙종 24년 2월 14일.

時傑曰, 鄭覃, 自是儒生, 當京城訛言之時, 能與李石陳君賞鎭定之, 城門若閉, 則必不免標掠之患矣, 此與晉謝安圍碁圖墅之事, 相類矣.

숙종 27년 9월 3일.

都承旨李思永上疏, 伏以, 臣侍藥無狀之罪, 實與諸醫無異, 當初臺啓, 雖不竝擧臣名, 而諸醫就理之後, 臣豈有獨逭刑章之理, 卽陳崩迫之缺數字加, 而聖度天大, 不加之誅, 反賜溫批, 臣誠惶隕感激。 且當百僚哀遑之心, 不敢爲退伏控籲之計, 冒昧就列, 亦旣有日矣。 乃者臺章再發, 諸醫之罪名甚重, 臣於此, 一倍惶蹙, 靡所容措。 席藁私次, 恭俟譴訶, 嚴召下降, 而不得秪赴, 臣之罪戾, 尤萬萬矣。 且臺啓中, 論諸醫怠忽之罪, 而至謂以博奕爲戱, 臣在提擧之末, 實與諸醫周旋, 則其不能戒責之罪, 亦所難逃矣。 臣負此罪犯, 豈敢晏然自同於平人乎? 伏乞聖明, 亟罷臣職, 以伸公議, 千萬幸甚, 臣無任祈懇之至, 謹昧死以聞.

숙종 28년 12월 27일.

王若曰, 勤懇之旨屢宣, 不憚煩複, 巽辭之章繼上, 胡至再三? 玆復諄諄, 毋庸邁邁, 念國家可爲太息。 顧今日此何等時? 下民其咨, 公私蓄積之匱竭, 上天不弔, 水旱饑饉之荐仍。 邊備疎虞, 封疆無可恃之勢, 朝論乖裂, 腹心有先潰之憂。 下一着而救危碁, 必待國手, 投半劑而起死疾, 惟在良醫, 是誠危急之秋, 孰任弘濟之責? 惟卿, 德量渾厚, 器度凝嚴。 이세백 퇴임상소.

영조 4년 3월 14일.

亦有之, 而卽今傅會訛言, 騷動迷民, 決非可憂之盜矣。 光佐曰, 聖敎至當。 符堅百萬兵, 勢如風雷, 而謝安圍碁賭墅, 意思安閑, 當大事而豈不用心? 其矯恃鎭物之量, 足以制勝而然矣。 然國事貴乎萬全, 卽今如人重病, 無扁鵲之良醫, 而徒以不足憂爲言, 不爲之對症投藥, 則將未知其病之至於何境矣。 上曰, 然。 不可輕動。

영조 4년 3월 24일.

 凡諸鎭壓之道, 必勿輕易有動, 以謝安事觀之, 符堅百萬師, 直指江左, 而謝安, 以數萬師, 破賊捷書至, 適圍棋, 人有問之, 徐曰, 兒輩遂已破賊, 此出於鎭壓之計。 殿下御門受俘, 豈不是好事? 而事涉輕遽, 有非泰山鎭壓之道, 伏願更加三思。 上曰, 謝安事, 表裏不相應, 心喜則當喜, 圍棋時折屐之心尙在, 此予所不取者也

영조 7년 4월 1일.

橈又上一紙書曰, 此之辭浩繁, 臣當讀之乎。 上曰, 上之。 惠敎曰, 此則不必卽今御覽之事矣。 上曰, 然矣。 橈又曰, 與留保輩, 頻頻往來, 甚爲非便, 故托以爲見朝鮮碁爲言, 連爲往來, 而韓壽大, 碁局善手, 故每與是瑜相往矣。 上曰, 善棋韓壽大何許人耶? 橈曰, 臣之帶去軍官矣。 橈又謂是瑜曰, 留大人, 皇上信任之臣也。 後當大用, 汝若誠心相交, 則必有益於國事矣.

영조 10년 4월 12일.

上曰, 鄧·謝無優劣, 而醉而恭, 高而謙者, 無彼此之別乎? 宗城曰, 鄧艾破蜀, 而志氣驕溢, 已與鍾會修郤, 謝安則捷報方至, 而圍棋不輟, 先儒雖以矯情言之, 鎭物之量, 蓋有之矣。 非鄧艾之可比, 而至於醉者之益恭, 高者之益謙, 雖無差別.

영조 11년 10월 20일.

周鎭曰, 大抵晉時人物, 只尙淸虛, 而全無實地。 安之資品極高, 而坐無學識, 此爲欠短。 若其雅量, 有可以鎭服朝野, 至於圍棋賭墅之事, 自坦之·桓沖諸人之所不能。 而及其得捷之後, 攝書置床曰, 小兒輩遂已破賊, 圍棋如故, 雖是矯情, 而其量之鎭物, 良可嘉矣。

영조 13년 6월 24일.

上曰, 虞允文, 乃文臣而能然矣。 金亮, 猶不如符堅, 而虞允文, 與謝安, 何如? 光毅曰, 謝安之聞捷報, 而圍棋自若者, 似有定算而然矣。 上曰, 不必有定算, 似是飾量矣.

영조 13년 11월 22일.

上曰, 注書持此出去, 分付, 可也。 臣師祚, 奉出, 分付後, 復入侍。 上曰, 昔晉謝安, 聞其姪謝玄之捷報, 圍棋自若, 而徐曰, 小兒輩成功, 及其入門時, 不覺屐齒之折, 其爲養量果何如耶?

영조 14년 2월 20일.

李喆輔罷職, 雖已行之, 而元無可罷之罪, 況譯官且有何罪乎? 尙星曰, 彼人之言故翻謄之際, 其所措辭如此耳。 光佐曰, 臣爲請留落後。 上曰, 聞上副勅相與圍棋云, 皆好着耶? 尙絅曰, 非徒圍棋, 又好吟詩, 昨者索題詩紙本, 故臣給之。上曰, 副勅快哉亭詩, 亦似好矣。 吏判雖斥其不好, 而可謂好詩者耳。

영조 22년 2월 27일.

上曰, 以此見之, 不動心果難矣。 明履曰, 非但射也。 凡干技藝, 若欲與人爭能, 則終不免動心, 如謝安圍棋賭墅, 可見之矣。 上曰, 此亦承旨有工夫之言也.

영조 37년 6월 20일.

上御思賢閤。 儒臣入侍時, 左副承旨兪漢蕭, 應敎李瀰, 修撰李碩載, 記事官金履禧·任一源·姜趾煥, 以次進伏。 上曰, 前漢書誰作也? 瀰曰, 班固之文也。 上曰, 儒臣先讀漢高祖記, 可也。 瀰讀至高起·王陵。 上曰, 高起, 人姓名乎? 瀰曰, 註以爲高官者皆起, 而其中王陵獨對也。 上曰, 予嘗疑之, 果如是乎? 上曰, 四皓事, 予未知矣。 圍棋於商山好矣, 而何不堅守初心, 而來於呂后之招也? 瀰曰, 世人或以爲假四皓矣。 上曰, 若以爲假四皓, 則誰使之然也? 碩載曰, 人以爲張良爲之矣。 上曰, 此甚言之辭也。 張良誰有謀, 若做出假四皓, 以謾其君, 則豈是臣道乎? 上曰, 下番讀文帝記, 可也。 碩載讀之。 上曰, 西向讓南向讓, 是何意也?

정조 5년 10월 14일.

義寬曰, 臣以民情事, 有所仰達矣, 平倉還上之弊, 其來已久, 而今當捧糴之際, 民訴逐日盈庭, 故査問其委折, 則所謂平倉保人輩, 受出許多還穀, 分給各人處, 而闕輩俱是破落無依之類, 多受餉穀, 暗生分利之計, 誘引閭里間流蕩雜類, 饋以酒食, 多設博奕之戲, 其中稍實者, 驅負賭債, 無錢可出, 則許以還米輸贏, 載其名於還案中, 如是屢朔, 一人之名所負, 爲六七十石者多, 初無粒米分錢入手之事. 비변사 토의 이의관의 말.


고종 1년 4월 15일.

載元曰, 讀書幾遍, 收其放心, 每如初遍, 則可庶幾矣。 得林曰, 讀書, 專心爲第一要法。 雖以博奕末技言之, 苟不專心致志, 鴻至將繳, 則不可學矣, 況讀書之以專心爲主乎? 必也心口齊到, 然後自然文理接續, 脈絡貫通矣。 載元曰, 誠以講官之言爲法, 口讀心思, 則成誦亦當易易矣。

위 기록들은 필자가 승정원일기 속에서 비교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 기록들이다. 사실은 승정원일기 속의 모든 바둑기록들만 모아 한권의 책으로 정리되는 것이 마땅하다. 해석본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래야 누군가 관심을 갖기도 하고 연구도 할 것이다.

내친김에 '비변사등록' '일성록'과 각 군영의 '등록'에서 본 바둑의 기록 등도 말해야겠다. 필자는 이 조선의 기록들 속에서도 수십 건의 무시못할 기록을 보았다. 참으로 혼자 보기 아까운 그 많은 것들... 누군가 세상에 말해주지 않으면 영영 모를 그 이야기들..  그러나 이런 작업은 한판의 방내기 바둑만도 못한 허접(?)한 일로 취급되고 도무지 관심사항도 아니다.

이런 분위기에서 졸고 '한국바둑사'의 출판과 함께 이것도 필자의 몫이 되었다. 필자가 잘나서가 아니다. 實은 없고 課만 있는 일이기에 필자의 몫이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