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바둑이 한국바둑을 뛰어 넘은 것은 불과 몇 세기 되지 않는다. 인조 때 일본에서 온 사신단의 선물 속에 들어 있는 바둑 기물을 보고 이런 것도 선물이냐며 사양하는 대목이 있는 조선실록은 당시대 일본의 바둑을 주목하지 않던 조선의 인식이다.

일본은 임진난 이후 잠시 혼돈을 겪다가 단일 막부로 정치를 안정시킨 후 다방면에서 발전을 하고 있었다. 위기소(圍碁所)를 중심으로 일본 바둑의 4대가(家) 가문이 태동하던 시대도 이때다.

조선 통신사는 영조 때에도 계속된다. 영조 40년(1764) 통신사를 수행했던 우상 이언진(1740-1766)이 수행하던 통신사 속에는 성대중, 원중거, 김인겸도 끼어 있었다. 당대의 문장가들이다. 이언진은 세상에 관심이 많았다. 그는 역관의 신분으로 시서화 삼절을 추구했다. 바둑 또한 그의 자랑 중 하나였다. 이언진은 역관신분이나 바둑의 고수라는 점이 참작되어 사행단에 발탁된다. 이언진은 자신의 바둑에 자부가 있었다.

떨어진 신발 낡은 갓

한가하게 이집 저집 돌아다녔네

한가지 재주라도 없으면 나의 부끄러움이지만

음악 바둑 축국도 나는 잘한다네

이언진의 시다. 자신은 가난하고 미천하지만 악(樂)과 예(藝)를 자부하고 있다. 그의 재주와 바둑은 박지원도 인정한다. 박지원은 이언진전을 통해 이런 말을 했다.

-삼사를 수행한 사람들은 모두가 뛰어나다. 뛰어난 문장과 박식은 물론 천문 산수 점술 각종 악기 바둑 활쏘기 등 나라안의 으뜸인자들만 뽑았다(博奕驥射以一藝各國者審從行而).

박지원의 이 기록은 조선통신사 속에 바둑의 고수들이 당당히 끼어 사행단에 참가했음을 증거하는 중요한 기록이다. 필자는 통신사행의 일본바둑 연관을 찾으려 수없이 통신사들의 기록을 살폈다. 그런데 홍세태의 기록 외에는 없었다. 그런데 다시 이 기록을 보게 된 것이다. 이언진은 일본을 돌아본 후 이런 시를 남긴다.

이 땅덩어리 안에 여러 나라가

바둑판의 별처럼 벌려 있어

월국의 주먹 상투, 호국 맥국의 털옷

깨끗한 옷과 시끄러운 모습

그들 모두가 끼리끼리 모여 산다네.

온세상 그런 모습들

일본이 나라를 이룬 그곳은

태양이 떠오른 땅,

숲은 뽕나무 가득..

이언진은 통신사를 수행한 조선의 문인 중 단연 발군이다. 김인겸이나 성대중조차 일본 안에서 그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한다. 사신단이 가는 곳마다 글씨 한 폭을 받기위해 일본인들은 줄을 이었고 그는 즉석에서 시를 한 수씩 지어주어 그들을 감격시킨다.
이언진의 글을 통해 볼 때, 조선 통신사의 목적은 일본의 계몽이다. 조선의 선진 문물과 학문을 일본에 전해 주는 것 외에는 조선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을 토로한다.

부상(扶桑)은 성덕대왕 신종의 명문에도 25사에도 보이는 일본의 다른 표현이다. 일본은 고대로부터 한반도 중국과 교통을 하고 있었다. 일본서기는 조작 첨삭의 혐의가 있음에도 우리의 삼국사기보다 자세한 한반도의 역사적 사정을 기록하고 있어 우리를 놀라게 한다.
475년 한성 백제가 말하던 날의 모습을 사진처럼 기록하고 있기도 한다.

-그때 조금 남은 무리들이 창하(倉下)에 모여 있었는데 군량이 다하여 근심하며 울기를 많이 하였다. (웅략 21년조)

장수왕의 전격적인 남침에 백제의 개로왕이 아차산에서 전사를 하고 한성이 함락되자 백제의 유민들이 창하로 겨우 도피를 하여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한반도의 어떤 역사서도 포착을 하지 못한 기록이다.

웅진으로 천도를 한 백제는 이후 일본에 불교와 천자문 등을 전해주며 지속적인 관계를 갖는다.

일본 학자 '소천탁치'는 이 사정을 들어 고대의 일본바둑은 백제의 그것과 같았을 것이라 말한다. 만엽집에 전하는 몇 편의 노래도 당시의 사정과 바둑의 시를 전하고 있기도 하다.

이언진은 말 안장에 앉아 지필묵과 화선지를 들고 있는 일본인들에게 글을 써 주면서 딱한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글 청하기를 바둑 청하듯한다고 했다. 고사(古寺)에서는 승려들이 거듭 부탁을 했다고 한다. 이언진은 그들의 요구에 열성적으로 응했다. 단순한 감상에 불과한 시문도 일본인들의 손에 들어가면 무엇인가 의미가 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기면서... 성호 이익도 이런 일본의 특성을 인정했다.

-일본은 섬나라지만 개국한 지 오래고 전적을 모두 갖추고 있다. '성리자의' '삼운통고'는 우리가 일본에서 구해 왔다. 이상국집(이규보)만 해도 우리 나라에 없는 것을 일본에서 구해온 것 아닌가. 일본의 책은 활자가 곧고 정연하여 우리 것과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다.

성호 이익의 이 글은 조선통신사가 끊긴 얼마 후의 기록이다. 통신사는 순조 11년 사행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성호의 이 발언은 한일 간의 문화적 수준의 차가 대등하거나 오히려 역전된 현실의 반영이다. 일본은 세상의 모든일에 관심이 있었다. 학문이든 기예든 잡술이든 가리지 않았다. 일본은 실용과 사람의 살림을 중요시 했다. 실용이고 실학인 것이다.

조선 문인들 중 일본을 다녀온 이언진, 성대중, 홍세태 등은 모두 일본을 한자락 깔고 본다. 박제가는 북학의에서 몽고인과 서역인들에게 노골적인 조롱을 표현하고 있다. 중화주의를 반복하는 소중화주의다. 아쉽게도 통신사들의 기록에 일본내의 바둑의 쟁투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한가지 좌은담총에 일본의 고수 '본인방산사'가 조선의 고수와 둔 바둑 내용이 전한다. 다음 편에는 그 이야기를 따져볼 참이다. 그 당시 한일 간에는 어떤 바둑을 두었던 것일까.

우리는 역사에 대해 무엇인가를 많이 알고 있는 듯하지만 기실은 아무것도 모른다. 불과 수백년 전의 바둑의 형식에 대해서도 깜깜하지 않은가.

읽으신 분들께서는 아래 [소설]란의 이청의 청룡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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