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의(御醫) 최성임 사건

조선시대 어의(御醫)는 나라안의 으뜸인 의술의 소유자로 수의(首醫), 국수(國手)라고도 했다. 어의는 약방 또는 내의원으로 불리던 궁실 관청의 수장으로 수십 명의 의원들을 이끌며 국왕과 왕실의 중요 인사들의 건강을 보살피고 병증에 대처를 해 왔다. 어의는 의원들의 독보적 존재로 평소 의원들의 지향점이기도 했다.

국왕을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보살핀다는 것은 백성으로서 영광이며 신하로서 입신양명할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따뜻한 모닥불도 지나치게 가까이 가면 탈이 나는 법, 조선 어의들 중 이런 경우를 당한 사람이 여러 명이다. 그중에서 바둑이 문제가 되어 은퇴를 하는 어의가 있다. 숙종 때의 일이다.

바둑에 빠져 업무를 태만히 하다 왕의 어머니를 죽였으니 어의 최성임과 부하들 15명을 모두 귀양 또는 삭탈 관직해야 한다는 상소가 올라온다. 숙종 23년 8월 23일의 일이다. 상소를 올린 사람은 지평 유명의다.


大行王妃證候, 元非急疾, 而兩載議藥, 無一收效. 諸醫等自初至終, 恬嬉玩愒。 前夏議藥設廳之時, 碁戲狼藉不輟, 外方諸醫, 雖有意見, 首醫終始力排, 使不得有無於其間。 請首醫崔聖任絶島定配, 其他諸醫, 竝命邊遠定配. 司直鄭載禧, 退處雖久, 亦嘗趨參賀班, 而今當國恤, 在江外至近之地, 終不奔哭於闕外, 乃反受衰於縣門, 請罷職 上批曰 古人云 ‘死生有命’ 凡人壽夭, 莫不在天.

대행 왕비(大行王妃)의 증후(證候)는 원래 급한 것(急疾)이 아니었는데 2년 동안 약(藥)을 의논한 것이 하나도 효험을 거두지 못하였습니다. 여러 의원(醫員)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맡은 임무를 게을리하고 세월만을 헛되이 보낸 것입니다. 지난 여름 의약청(議藥廳)을 설치할 때에도 늘상 바둑 두는 것을 그치지 않았고, 끊임없이 외방(外方)의 여러 의원들이 비록 의견을 내놓았지만 어의(首醫)가 시종 힘써 배척하여 그 사이에서 어떻게 할 수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청컨대, 어의(首醫) 최성임은 절도(絶島)에 안치(定配)하고, 그 밖의 여러 의원들을 모조리 먼 변방에 정배하도록 명하소서.

바둑은 궁인들만 아니라 어의는 말할 것 없고 내의원의 의원 거의 전부가 즐긴 것은 이미 알아본 바 있다. 그러다 사단이 단단히 난 것이다. 최성임은 어의다. 그는 조선 제일의 명의라는 의미에서 국수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었다. 우리는 야사 이향견문록에 명의 양예수와 유의태를 본다. 어의와 지방의 의원 신분으로 갈린 두 사람의 라이벌 의식이 재미있게 구성되어 있고, 그들은 당대 제일의 명의라는 자존심을 놓고 겨룬다. 드라마 허준의 소재로 사용된 내용이기도 하다.

최성임은 노환으로 서서히 죽어가는 대행대비의 병을 치료하며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모양이다. 시급하게 치료를 하라는 도제조와 고급 관료들의 등쌀, 거기다가 시골의 한다하는 의원들까지 자신이 치료를 하면 며칠이면 치료하겠다 둥의 호기(?)를 부리는 통에 처신이 무척 곤란했을 것은 자명하다.

최성임은 퇴궐도 못하고 내의원에 말뚝을 박고 대기를 하며 병자의 상황을 지켜본다. 그리고 무료하다. 이 때 내의원 숙직 의원들이 바둑을 내놓고 둔다. 자연스런 일이다. 그러나 궁안에는 많은 눈이 있다. 일이 잘 되었으면 아무것도 아닌 일이 사단이 나려니 중대 하자로 번진 것이다.

숙종도 바둑을 잘 둔 왕이다. 비와 공주들과 한 자리를 할 때면 그도 바둑으로 시간을 보내곤 했다.

숙종은 당황한다. 절도에 안치하라는 죄목은 약한 대역죄에 해당한다. 당대의 명의를 완전 망가트리는 행위다. 그러나  노련한 왕 숙종은 불가를 말한다. 숙종은 조선에서 가장 활발했던 당쟁의 중심에 서 있던 왕이다.

숙종은 불가하다 말한다. 인명이 재천이고 명의의 일은 한계가 있거늘 그걸 핑계로 의원들을 처벌하는 것은 바둑으로 쳐도 가장 하수의 수라는 것이다. 또한 바둑으로 그들이 휴식을 했다면 그 또한 치료의 한 행위로도 볼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이때 사씨남정기라는 소설이 유행한 적이 있다. 숙종의 여인들인 민씨와 장씨의 정치적 숙청과 복권의 드라마를 의인화하여 유행한 소설인데 김만중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숙종의 시대는 송시열 윤선도 김만중 윤증 등의 대단한 인물들이 넘쳐나던 시대였다. 이 당시 조선 사람들은 소설을 "구름"이라 하며 열광을 하고 있었다.

작가는 물론 책방 그리고 책을 구술해 주는 청방(聽房) 등이 한양은 물론 전국에 유행할 정도였고 인기 작가들의 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김만중은 단연 스타였다. 구운몽은 구름 중의 구름으로 대접을 받기도 한다.

어의 최성임은 김만중과 친분이 있었다. 김만중은 남인으로 남해에 귀양을 가 있었고 최성임 또한 남인의 한 사람으로 몰려 탄핵을 당한 것임을 짐작케 한다. 대행대비의 죽음의 책임은 핑계고 목적은 반대 당파를 내몰기 위한 술수인 것이다. 마침, 바둑이 좋은 구실이 된다.

이 사건은 숙종의 단호한 의지로 가라앉는다. 그러나 최성임은 사직을 한다. 신상 문제로 임금을 곤란(?)하게 한 신하는 사직을 청하는 것이 조선 관료 사회의 관례였다. 그는 다시 등용되지 못한다. 그는 시골로 내려가 의원을 열었을 것이다. 뒷소식은 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