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도의 그림 '후원위기'를 보면 엄숙 단정하다. 해학과 골계미로 극찬을 받는 단원의 평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바둑 그림이 의외다. 소나무 그늘 아래 두 사람이 바둑을 두고 있고 그 옆에 한 사람이 앉아 구경을 하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진지하다. 조금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사람들이 꼼꼼히 그 장면을 바라보고 있다.

옥계시사의 좌장인 '장혼'의 글에 동료들과 시회(時會)를 떠나며 김홍도를 대동한 대목이 나온다. 화가와 함께 가 자신들의 노는 모습을 그리게 한 것이다. 장혼은 친구 사귀는 데 바둑과 문학이 좋다고 했다. (장혼집)

'이덕무'는 어린이 바둑대회를 말한다. 큰 장막을 치고 어린이들이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대국을 벌이자 어른들이 바둑판을 사방에서 에워싸고 죽었느니 살았느니 하며 시끌벅적하다. (청장관전서)
'이장찬'은 부모님 회갑날에 바둑판을 세 벌 준비했다고 한다. (향은집) 
조선시대는 잔치날에 바둑판을 준비하고 손님들의 여흥을 대신했던 것일까. 고려대에서 나온 작년의 논문 한 편(조선 위기도 연구)은 일리가 있다고 말한다.

하여 고려시대 기녀 '동인홍'의 시 太守分營一局棋(태수가 편을 갈라 바둑 장기 두라 하네)가 있는 것일까. 세조는 주역과 오행을 궁리하면서 뜬금 없이 바둑과의 관련성을 말한다. 끊고 젖히고 두드리는 것이 음양오행과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세조는 조선의 모든 군왕들 중 선조와 더불어 바둑을 정도 이상 좋아했던 임금이기는 하다. 세조는 오늘날 후지쓰배 상금보다 많은 상품을 걸고 신하들에게 바둑을 두게 한다.

멤버들은 '한명희' '신숙주' '구치관' 등이었고 그날 주어진 상품이 과하마 5필이었다. (세조실록)
오늘날 제주에 가서 상급의 말 한 필 값을 따져 보시라. 옛날에는 말값이 껌값이었다는 생각은 말자. 당시 말 한 필 값이 한양에서 집을 사기에도 충분했다.

이순신이 바둑을 좋아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난중일기 속에도 바둑 기록이 여러 건 나온다. 선조 26년 '이덕열'은 선조 앞에서 이순신을 탄핵한다. 원균이 보고해 오기를 이순신이 자신의 전공을 과장한다는 것이다. 이 말에 답하는 선조의 대답이 재미있다.

- 왜장이 배의 3층 누각에 관을 쓰고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배가 허술하여 우리 수군의 당파 격돌에 즉시 부숴졌다는 보고를 받았다. (선조실록)

선조도 이순신의 승전 보고를 다소간 과장(?)으로 인식하고 있다. 옆에 있던 유성룡과 윤두서가 선조의 심정을 헤아려 이순신과 원균을 함께 두둔하며 전란을 끌고가게 해야 한다 조언을 한다. 전장의 한복판에서 바둑을 두는 왜장의 호기(?)가 눈길을 끌지만 윤두서의 이순신 옹호도 뜻밖이다.

바둑이 도무지 무엇이건대 조선의 한자락 역사의 페이지를 열면 저리도 확연한 것일까. 잔치집에서 유곽에서 왕의 편전에서 시석여우(矢石如雨) 하던 전장까지 고색창연하다. 정약용은 바둑의 몰가치를 말한 바 있다. 최익현(면암집)은 바둑은 잘 모르겠다 하며 부정론도 전개하기도 한다. 이학규(1770-1835)는 바둑에 다섯가지 금도가 있다며 서혁기보후(書奕碁譜後)를 남긴다.

이학규는 15년간 김해 지방에서 귀양을 살았던 불운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출중했고 지옥같은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장점을 살려 세상의 존재감을 찾는 법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학규는 죽은 지 백년 후에 와서야 겨우 세상에 알려진 사람이다. 이학규는 바둑을 수투(手鬪)라고도 했다. 한 판 바둑에 만 냥을 버리고 호기롭게 그 자리를 떠나는 사람도 보았다 증언한다.

(勿爭執白 俗謂手高執白 又謂年長執白 /甚有蹠輕抹口 低死爭執 余謂得勝者 爲/高手受人敬禮者 爲年長必不當以執白爲優也. /勿好勝喉怒 本爲韶遺 反興拂怒 /甚有提坪撲樞 反目...)

이학규는 바둑에 다섯 가지 금도가 있다고 한다. '비수'가 있다고 하는 것, 자칭 고수라 하는 것, 흰돌을 다투는 것, 승부에 화를 내는 것, 남을 기망하여 승리를 하는 것이 바둑을 두는 데 있어 피해야 할 금도라는 것이다. 잠시 저 문장을 해독해 보자.

- 흰돌 잡는 것을 다투지 마라. 시중에서 흰돌을 잡는 것이 고수라 하고, 연장자가 흰돌을 잡는다 하며 서로 흰돌을 잡으려 핏대를 세우며 싸운다. 내가 볼 때 이기는 사람이 고수고 공경과 예의를 아는 사람이 연장인(?) 것이니, 흰돌을 잡는 것이 자랑이 아니다.  승부에 화낼 것 없다. 바둑은 본래 즐기기 위한 것, 이것을 두고 화내고 바둑판과 돌통까지 내동냉이를 치며 눈을 부라리며 욕설까지 한다.

이 말은 오늘날의 인터넷 바둑을 고스란히 말하고 있다. 바둑의 속성은 역사 속에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다. 이학규의 이 문장은 역동적이고 생동감이 있다. 박지원의 문장이 이렇다. 이학규가 본 조선시대의 바둑은 시장판의 그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시간의 저쪽으로 한발만 들여 놓으면 낙하생 이학규가 앉아 이쪽을 보고 말한다.

- 티머니 잃어서 화가 나시나?  급수를 속이고 둔 사람이 있어 열 받으시나?  베팅에 져 대국자가 미우신가?  바둑은 그저 즐기자는 것,  이기고 지는 것에 그리 마음쓰지 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