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이 집압된 정주성 안에서 살아남은 선아는 열여섯 살이었다. 선아는 관노 도주자였고 반군 혐의자였다. 그러나 선아는 성에서 나와 한양에서 살게 된다. 선아는 한양 남산에 작은 기방을 내고 생도지망을 꾸리게 된다. 오포장이 뒤를 봐준 덕이었다.

선아는 1862년까지 산다. 선아는 수편의 희설(소설)을 짓기도 했는데 주로 양산박류의 군도희설이다. 선아는 홍경래와 약속을 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홍경래를 증언한다는 것이었다. 선아가 홍경래전을 완성한 것이 1861년 죽기 한해 전이었다.

희설은 발표할 수 없는 것이었다. 홍경래는 죽었지만 홍경래를 팔아 조선을 흔드는 사건이 빈발하여 홍경래는 조선 기찰기관의 감시대상이었다. 철종시대로 오면 조선은 완전한 안동김문의 시대가 된다. 철종의 장인 김문근과 김조순의 아들 김좌근의 전횡의 시대가 된다. 홍경래전은 이때 쓰여져 20세기에 발견되어 학자들 사이에 알려진 소설이다. 지금 세상에 홍경래의 모습을 그림자나마 더듬어 볼 수 있는 것은 모두 이 소설의 공이다.

- 다복동은 가산 박천 사이에 버드나무잎 같은 곳입니다. 좌로 우로 험하지 않고 울창한 숲과 아득한 산비탈이 아늑한 곳이었지요. 마을 뒤로 한양 의주길이 열려 있고 앞으로 '대령강'이 흐릅니다. 아 골짜기 안은 그다지 넓지 않지만 그래도 이십 리 길이 족하고 안과 바깥이 한적하고 길까지 좋으니 숨기에나 나타나기에나 모두 편한 곳입니다.

서두를 이리 잡아 나가는 한문으로 된 이소설은 홍경래가 지은 시 한편을 보여준다. 완성된 작품은 아니지만 홍경래의 약간의 문력을 가늠할 수 있다.

달은 많은 별들을 거느리고

바람은 나무잎을 몰고 가을산에서 싸우도다.

月將衆先屯霹落
風驅木落戰秋山

자객열전에 나오는 협객류의 시들을 모작한 수준이 높지 않은 수준이지만 풍운의 삶을 살다간 한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흔적이라고는 할 수 있다. 소설 홍경래전도 일본 사람들의 손에 발견되어 전한다. 관서평란록도 지금 일본에 있는 책이다. 그러고보면 도무지 한국의 학계(?)라는 것이 쓸쓸해 보인다.

선아의 바둑은 더이상 진전이 없었다. 그러나 김밀수 즉 김석신의 후원자가 된다. 김석신은 조선 후기를 주름잡던 최고의 바둑고수다. 김석신의 계보가 김만수 노사초 등으로 이어진다.

홍경래의 난은 끝났다. 선아의 꿈도 희설 한편으로 끝났다. 그러나 홍경래는 다시 태어난다. 선아의 꿈도 그렇다. 조선바둑의 마지막 고수 김석신, 그의 품에서 키워진 '이규완'에 의해서다. 이규완은 정주성에서 죽은 이희저의 손자로 훗날 김옥균의 친구가 되어 갑신정변에 투신한다.

홍경래는 선아를 키우고 선아는 김석신을 도와 이희저의 후손을 키워 또 다른 내일의 태양을 기대하는  수레바퀴를 돌린다. 그것이 삶이고 역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