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나 지금이나 미래나 선비는 한가지 특징이 있다. 修己하고 義氣하고 異俗이다. 선비는 자신을 닦고 자신의 가치보다 세상의 가치를 존중하며 자잘한 세속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이 선비란 사람들의 추구상(像)이다. 선비는 둘이 아니다. 선비는 다른 곳에서 구하지 않는다. 선비는 모든 것을 자신에게서 찾는다. 자신을 가장 냉혹하게 바라보고 엄정한 평가를 구한 다음에 다음을 고려하는 것이 선비다. 하여 선비는 항상 시대의 선구자였고 방향타였다. 미래 또한 그들의 몫이다.

의사(義士)는 선비의 다른 표현이다. 선비의 기질이 없는 협기는 객기일 뿐이다. 김사용은 의사이자 선비였다. 홍경래는 김사용의 무덤을 성안에 마련했다. 관군의 눈을 피해야 하는 탓에 분봉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고 술 한잔을 따라야 했다. 눈물의 순간이었다. 이 순간에도 관군은 땅밑으로 정주성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관군은 동문 앞에 성 높이의 모래성을 쌓으며 반군의 시선을 온통 그쪽으로 쏠리게 하고는 북문 앞에서 땅굴을 파기 시작했다. 모래성을 쌓는 쪽엔 전차와 운제 등 각종 장비를 동원하고 수백 명의 인부를 모래 운반에 동원하여 누가 봐도 관군의 주공격방향으로 인식하도록 했다. 반군은 공격장비를 운용하는 관군을 골라 저격하고 수시로 성문을 열고 나와 인부들을 주살했다.

관군의 땅굴작전은 4월3일부터 시작되었다. 운산광산에서 잡아온 광부들과 군졸 300명이 동원되어 50명씩을 교대로 투입하여 24시간 작업이 계속되었다. 최초 개굴처로부터 성밑까지는 어른걸음으로 200보 정도였다. 땅굴의 높이와 폭은 2척5촌(약 75센티미터)로 사람 한명이 겨우 엎드려 통과할 정도였다.

개굴처에는 가마니에 흙을 넣어 방어막을 쌓아 성의 감시를 피하고 성 위에서 쏘는 총탄을 피하는 한편 작업을 용이하게 했다. 반군도 관군이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음을 눈치는 채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포대를 만드는 작업과 함께 묻혀가고 있었다.

땅굴이라 해서 온전한 땅굴도 아니었다. 관서평란록의 땅굴작전을 면밀하게 살펴보면 참호개념임을 알 수 있다. 참호를 파고 위를 연목(椽木)을 걸치고 가마니를 덮고 위에 흙을 다시 덮는 방법이었다. 이것은 이제까지의 홍경래난을 피력한 모든 인사들의 땅굴기술이 별다른 고민이 없었음을 알려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땅굴은 성문 앞에서 갑자기 무른 지반이 나타나 방향을 갈지자 행마를 하며 당초 예상 굴착 기간을 사흘이나 넘겨 북장대 앞에 도착한다. 화약을 묻은 지점은 정확하게 북장대 성문 앞이었다. 성문 앞에는 넓은 갱도공간을 확보하고 화약과 화약을 발화 증폭시키는 연지, 소포를 차곡차곡 쌓아 진흙과 가마니 등으로 덮어놓고 심지를 끌어내어 발화 준비를 모두 마치게 된다.

이 작전에 동원된 화약은 1,710근 연지와 소포는 90근의 엄청난 양이었다. 조선군의 1년 화약 소모량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화약 35만 그램을 한 구덩이에 넣고 일시에 터트리는 작전인 것이다. 이런 작전은 조선 전 역사를 통해 처음 있는 일이었다. 화약전이 치열했던 임진왜란 때도 병자호란 때도 이 정도 규모의 화약이 일시에 모아진 적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