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말을 세우고 사타(沙陀)에서 일어섰네.

저 '주량'의 학대를 어이할거나.

한손으로 당의 사직을 지키기는 어렵지만

늘어선 성들은 진의 군대를 막아주네.

풍운의 장막 아래 뛰어난 아이 있어

북소리 피리소리에 등잔불 늙은이 눈물만 많도다.

가을바람 쓸쓸하게 산모퉁이를 부노니

오늘도 사람들은 백년가를 부르네.

-엄수성

천하성(天下聲)이 울었다.

평양대동관 공격으로 세상에 분노하고 절망하여 끝내 세상에서 삶의 방도를 찾아내지 못한 민심이 있다는 것을 경고한 홍경래군은 자신들의 대의에 동참하는 모든 동조자들에게 다가오는 12월20일 거병(擧兵)할 것임을 알리고 각자의 역량 하에 있는 모든 인마와 물자를 다복동으로 집결시킬 것을 명한다.

대동관이 불탄 지 보름 후 다복동에 집결한 막료회의는 군사작전의 큰 그림이 그려진다. 이 막료회의에 참가한 인물은 홍경래, 이희저, 우군칙 등 혁명의 중추를 필두로 김사용, 김창시, 이제초, 홍총각 등 30여 명이었다. 이날 회의에 참가한 사람들은 '관서평란록' 임신년 3월7일 박효신 조서에 가장 세밀하게 나와 있다. 박효신은 조사관의 질문에 자신이 본 반란 지도부의 처음의 모습을 생생하게 기억해낸다.

(1811년 10월 이후로 각지의 인물들이 다복동에 모였습니다. 진두의 이장 '김정우'가 모군관으로 결정되었고 김창시가 운산 촛대광산의 노동자들을 봉기군의 중심으로 만들었고 김창시, 이희저, 장억대, 박성신 등이 군량을 조달할 것을 약속했고 7월에 홍경래와 선천의 유문제, 계형대, 이제초, 이제신, 영변에 사는 김운룡, 차남도, 개천의 이야유, 박천의 한지겸, 한신행, 김지헌, 최대운 등이 우군칙의 집에 모여 12월20일을 거병일로 정한 것입니다.)

박효신의 공초는 반란군의 최말단의 입장에서 반란의 지휘부를 본 기록이다. 박효신은 자신이 본 것 그리고 자신이 들은 모든 정보를 취합하여 반란의 지휘부를 기억하고 있다. 물론 정확하지 않다. 홍경래나 이희저 같은 대장급 지휘관에 대한 구별도 못하는 초보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조서들이 여러 건 모여 비로소 홍경래집단의 지휘부와 서열 등을 재구성할 수 있다.

천하성은 다시 거둬들일 수 없다. 엎어진 물을 다시 쓸어담을 수 없는 이치다. 운산광산에는 천여 명의 장정들이 모여 반년 가까운 조련을 받고 있었고 홍경래는 이날 회의를 통해 서북은 물론 평양, 해서, 한양까지 퍼져 있는 모든 동지들에게 12월20일 거병일로 정하고 통문을 돌린다.

-대의에 동조하는 자 모두 다복동으로 모여라.

대의는 세상을 혼동시키는모든 삿된 무리들을 척결하고 선민 양민들이 즐겁게 사는 세상을 만들자는 것이다. 홍경래는 막료회의를 끝내고 춘대만을 대동하고 박천의 한 집으로 갔다. 그곳에는 홍경래의 가족들이 와 은거(?)하고 있었다.

집안에는 선아와 사내아이 둘이 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둘 다 열살을 겨우 넘긴 아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