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는 얼마나 삿된 꿈이 피었나.

세상에는 수많은 영웅들이 나타났네.

또다시 나누고 보태지 마소.

대명은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오.

(靑史幾番春夢/紅塵多小奇大/不順討較更安排/領取而今現在)

시/주돈유(1081-1159)   역/이청

1811년 11월 조선은 어수선했다.

정조 사후 11년 정치는 정조 때와 하등 다름없이 비루했고 비루한 정치 속의 백성들의 삶은 비참했다. 조정은 김조순에 숙여살던 박종경의 도전으로 파란이 일고 있었다. 장인 김조순의 간섭에 잠시 염증을 느낀 순조가 박종경의 손을 들어주면서 범노론세력이 균열조짐을 보이며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홍경래의 난은 이때 발생했다. 역사의 연구자들과 교과서는 홍경래가 정식으로 개전을 선포할 때까지 조정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조선은 중앙으로부터 지방 향촌의 관아에까지 고도로 훈련된 아전제(공무원)를 두고 있었다. 조선의 그런 행정군사 체계가 홍경래난과 같은 대규모 반란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말은 말이되지 않는다.

평양의 대동관사건은 즉각 비변사에 보고되고 조보를 통해 한양의 모든 관원들에게 회람되었다. 이때 박종경은 김조순과 마주앉았다. 조정의 실세들이 사건의 판단을 해주어야 조정이 굴러가는 상황(?)이었다. 김조순은 여전히 여유만만이었다.

"요즘 적조했소이다."

김조순이 평상에 몸을 기대고 박종경을 맞았다. 박종경이 자신의 방으로 찾아온 것이 싫은 표정이 아니었다. 김조순은 정약용과 거의 동년배다. 규장각에서 함께 근무한 적도 있다. 정조의 특명으로 규장각근무자 시험을 볼 적에 정약용이 3등으로 80점을 받았을 때 김조순은 4등으로 79점을 받은 적도 있다. 정약용이 유배에서 풀릴 때도 김조순은 반대를 하지 않았었다.

"대동관사건을 어찌 처리하올지?"

박종경이 대동관사건을 물었다. 정치에 적과 동지는 따로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는 세계가 정치였다. 박종경과 김조순은 한 시대의 인물이다. 그들은 정치적으로 제로섬 게임을 하고 있었다. 홍경래가 거사의 명분을 박종경 김조순의 제거로 들 정도로 그들은 거대한 존재였다.

"박대감은 어쩌면 좋겠소이까?"

"군대를 보내야 한다고 봅니다만."

"군대를요? 왜요?"

"첩보로 볼 때 서북에 거대한 준동이 있는 듯합니다. 조정의 의견을 통일한 후 상께 주청을 드려야한다고 봅니만..."

"하하, 지난번 해서적당건을 또 반복하겠다고요?"

김조순이 박종경의 말을 묵살했다.

"대감?"

"이보세요. 대동관이 단순 실화로 불이난 것은 아니라고 나도 봅니다. 허나 그깟 일로 군대를 모아 보세요. 작금 나라사정이 감당하지 못하고 백성들 고초가 뻔합니다."

김조순이 책실(비서실) 막하들에게 꿀물을 타오도록 지시를 한 후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