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대는 성안 약방거리에서 한 사람을 만났다. 그는 홍단의 평양거점 망원인 조필상이었다. 조필상은 약방을 하고 있었다.

"홍대인 사람이라고요?"

조필상은 약방 앞 평상에 앉아 있다가 춘대의 방문을 받고 물었다. 평상 위에는 바둑판과 바둑알이 놓여 있었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와 바둑을 둔 모양이었다.

"그렇소이다. 장군께서 조의원의 도움을 받으라 했소이다."

"바둑을 둘 줄 아시오?"

"네에?"

"바둑을 둘 줄 아느냐 물었소이다."

"잘은 모릅니다. 방관은 좀 해보았지요."

"방관은 해보셨다니 혁가십결의 입계의완을 아시겠소이다."

조필상이 엉뚱한 말을 하고 있었다. 갑자가 찾아온 사람이 홍경래를 거론한 것에 대한 경계심이었다.

"적이 강한 곳에서는 생로를 고려하라는 말 아닙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위기십결은 조선시대 혁가십결이라 했다. 혁가십결은 송나라 사람 유정보가 지은 추세보에 등장하며 조선은 물론 중국 일본의 바둑계를 넘어 문화사와 인생철학으로까지 발전한 담론이다.

"홍대인의 눈가에 마마자국이 있지요?"

"그건 또 무슨?"

춘대는 뜬금없는 질문을 반복하는 조필상을 쏘아보며 물었다.

"마마자국 맞지 않습니까?"

"사마귀올시다. 의원께서는 홍장군을 만나보기는 한 게요?"

"하하, 사마귀였던가요? 암서를 보여주시오?"

조필상은 돌다리도 두드려보는 사람이었다. 춘대는 마마자국 운운한 조필상이 자신을 떠보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품속에서 암서(暗書)를 꺼내 놓았다. 홍단 안에도 서로 얼굴을 모르는 동지들이 산재한 탓에 접선을 위한 암호였다.

"호작, 하하 맞군요. 어떤 지시입니까?"

조필상이 두 장의 쪽지를 맞추어보고 암호를 확인하고는 물었다.

"드디어 천하성이 울렸습니다."

"뭐요? 천하성요?"

"그렇소이다. 제가 선봉군을 이끌고 이곳에 들어왔소이다."

"선봉군이라고요? 그럼 벌써 거사가 시작되었다는 말입니까?"

"조의원?"

춘대는 약방앞을 지나가는 행인들을 의식해 그의 입단속을 시켰다.

"아, 내가 너무 흥분을...그래 장군이 내린 명령이 무엇입니까?"

"조의원이 길안내를 해주셔야겠소이다."

"길안내를요?"

"사창을 파괴하는 것이 임무올시다."

"그렇소이다. 평양 사창을 파괴하는 것이 봉화올시다."

"아? 그래요..."

조필상은 가슴이 뛰는 모양이었다. 두 손이 뜨거워 주먹을 쥘 수 없을 정도인 모양이었다. 그의 두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