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 큰 돈을?"

조득영은 입이 딱 벌어졌다. 박종경이 내민 어음은 2만 냥짜리였다. 왕실과 물실혼인(勿失婚姻)한 후 위상은 높아졌으나 아직 자금통로를 확보하지 못해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조득영의 약점을 파고드는 박종경 특유의 수법이 빛이 나는 순간이다.

"인사올시다."

"대감, 그래도 이건...."

"부담이 되신다면 한가지 청을 드리지요."

박종경이 술잔을 들며 말했다.

"청이라고요?"

"이번 동당시(東堂試)에 내가 천거하는 사람 몇을 낙점을 해 주시요."

박종경이 동당시를 말했다. 동당시는 과거 대과(大科)를 말한다.

"아니 대감, 소인은 이번 동당시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걸 모르지시는 않겠지요?"

조득영은 한성판윤으로 과거와는 관계가 없는 직책에 있었던 만큼 의문을 표하며 물었다.

"아 그걸 왜 모르겠소이까? 이번 대과에 유력자들의 이목이 집중이 되어 있지 않소이까? 그래서 이번 과거의 도제조로 내가 조판윤을 천거할까 합니다. 판윤이 풍고대감의 사람으로 알려져 있으니 풍고대감도 찬성을 할 것이니 쉽게 그리되겠지요. 그때 좀 봐달라는 겁니다."

"오.....!"

조득영은 박종경의 전략에 감탄을 했다. 적의 동지를 나의 친구로 만드는 '삼략'을 실감나게 보는 듯했다. 조선 문과의 급제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정약용을 보면 알 수 있다. 정약용은 20대 전부를 과거에 올인하고도 급제를 하지 못했다. 정약용을 성균관 학생시절부터 아끼던 정조가 특별히 베푼 약식과거에서 입격할 정도라면 말해 무엇하랴.

초기조선의 과거는 매우 공명하고 정대했다. 조선 오백 년의 화려함은 과거제도의 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러나 이 과거제도는 영정조 시절부터 급격하게 타락하기 시작한다. 과거 응시자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생긴 사회적 부조리는 순조 때에 오면서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부패하게 된다. 조선의 과거는 유력가문의 전유물(?)로 격이 떨어진다. 순조18년 '이영하'는 과거의 병폐를 다음 여섯 가지로 특정하여 상소를 하고 있다.

1. 남의 글을 빌려 쓴다.

2. 바깥에서 작성한 답지를 과거장으로 들여온다.

3. 시험장엘 아무나 들어간다.

4. 답지를 바꾸어 낸다.

5. 종이와 책을 과거장에 반입한다.

6. 시험문제를 사전에 알아낸다.

박종경은 조득영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어 김조순과 대항하려는 거대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김조순의 입장에서는 도전이고 반역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