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경은 순조를 자신의 집으로 미행을 나올 것을 주청한 후 궁을 나왔다. 그는 탐학하고 호욕(好慾)한 인물이었다는 것이 역사의 평가다. 사실적으로 박종경의 작폐가 기록으로 여러 건 확인된다. 그러나 박종경의 가문 자체가 엉터리는 아니다. 박종경의 아버지인 박준원의 딸이 정조의 후궁으로 낙점된 것이 그것을 증명한다.

정조는 까다롭고 치밀한 사람이다. 그런 정조가 30대에 발탁한 후궁이라면 가문의 청명성은 나물랄 것이 없다. 박준원은 정조의 측근으로 꼽히면서도 정조의 정적인 정순왕후에게도 잘 보인 수완가이기도 했다. 박준원은 탐욕하고 호욕인 아들 박종경을 여러번 질책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인품도 짐작이 된다.

박준원에게는 형이 하나 있다. 박윤원(1734-1793)이다. 박윤원은 정조시대의 대학자인 김원행, 김지행의 문하에서 공부를 하여 타고난 학문을 인정받아 1792년 음직(과거를 통하지 않는)으로 선공감역에 임명받았으나 출사하지 않고 다음해 세자(순조)의 서연관에 다시 임명을 받고도 사직을하는 올곧은 학자였다. 박윤원은 김창협, 김원행의 학맥을 이어받아 홍직필에게 바톤을 이어준 성리학의 계승자다.

이런 출충한 가문에서 박종경이 나온 것은 김조순의 가문에서 김좌근이 나온 것과 비슷한 경우겠다. 조선의 십대 국반 중 반남박씨의 영욕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 박종경이다. 반남박씨는 태종 때 문신 박은과 선조가 의인왕후 박씨를 왕후로 들이면서 두각을 나타낸 가문이다.

반남박씨는 박종경의 시대에 환상의 꽃을 피운다. 박종경은 말할 것 없고 그의 형제인 박종래는 이호공병조 등 오조판서를 20여 회나 돌아가며 역임했고 또다른 형제인 박종보는 판서와 한성판윤을 거칠 정도였으니 한때 박종경의 위세가 짐작된다.

박종경은 퇴청길에 광통교 기방에서 조득영을 만났다. 조득영은 평양감사에서 물러나 한성판윤을 하고 있었다. 조득영은 순조의 자식인 효명세자의 장인으로 낙점이 되어 있었다. 박종경 김조순 조득영 등은 순조를 에워싼 사돈간인 셈이다.

"영감께서 저를 어찌...?"

조득영이 몸을 한껏 낮추며 말했다.

"왜요? 내가 조판윤을 보자고 한 게 잘못입니까?"

"아, 아니올시다. 그저 황송해서요."

"하하, 적조해서 술이나 한잔 할까 청했소이다. 노엽지는 않으시지요?"

박종경이 장래의 국구에게 에의를 표시하며 술을 한잔 따랐다.

"노엽다니요? 뭐 그런 말씀을 자 저도 한잔."

조득영이 술잔을 받아 마시고 박종경에게 주었다. 깍듯한 예의였다. 조득영의 입장에서 박종경은 조정의 실세라 할 수 있다. 아직은 그는 애송이였다.

"내가 조판윤을 보자고 한건 용체를 좀 드리려는 겁니다."

"용체요?"

"그렇소."

박종경은 단도직입이었다. 그는 에둘러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박종경은 이만 냥짜리 어음을 조득영 앞에 내 놓았다. 만상이 발행한 어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