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경의 독주는 계속됐다. 박종경이 형조판서에서 판중추부사로 자리를 옮기고도 호조와 이조 양조의 도제조(?)를 자임할 정도로 전횡을 해도 아무도 말릴 사람이 없었다. 그것은 박종경이 뿌리는 자금 때문이었다. 박종경은 범노론 겸 친안동김문은 물론 자신의 일에 협조적인 사람이라면 남인 서인을 가리지 않고 용돈(?)을 주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웠다.

순조는 박종경을 신임했다. 사사건건 간섭과 자중만을 요구하는 장인 김조순보다는 이것저것 사소한 것까지 마음을 써주는 박종경이 마음에 들었다. 더구나 박종경은 그의 외삼촌이었다. 조선의 풍습에 외가와 외삼촌은 이유 모를 애틋한 관계가  있어 더욱 그랬다.

"어서오세요. 박부사께서 이번에 마음을 많이 쓰셨습니다."

순조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서는 박종경을 반갑게 맞았다. 얼마전 박종경이 북경 유리창에서 온 박물(博物) 여러 점을 보내준 답례였다.

"신기한 것들이기에 올린 것이옵니다. 상께서 요즘 바둑에 빠지셨다지요?"

박종경이 말하는 바둑은 뜬금없는 것이 아니다. 순조는 25세 청년이었다. 청년의 혈기는 이것저것 관심도 많은 법이다. 순조는 바둑을 좋아했다. 스스로 바둑을 둔 기록은 없지만 주변인과 바둑을 이용한 담소와 바둑을 두는 장면을 보고 즐긴 모습은 있다.

"아 정무를 마치고 한가할 때 궁인들이 두는 바둑을 보면 소일이 됩니다. 그리고 참, 박부사, 말이 나온 김에 좋은 위기도 한점 구하고 싶은데요."

순조가 위기도(圍棋圖)를 말했다.

"위기도라면 궁안에 많이 있을 듯하옵고 아니면 화원에 명을 내려 그리도록 하면 될 듯하옵니다만."

박종경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순조의 우측 앞자리에 부복하고 있었다.

"그런 그림은 재미가 없고요. 박부사. 내가 화원들을 모아 그림대회를 열까합니다."

"화연을요?"

"그래요. 그들을 모아 화제로 위기를 주어 경쟁을 시킨다면 좋은 위기도가 나올 것 아닙니까?"

"오, 그거 좋은 생각이시옵니다. 화원들 사기도 올려줄겸요."

"맞아요. 그래서 말인데요. 화연을 박부사께서 맡아 여세요."

"마마. 그건 예조에 맡기시면..."

"아닙니다. 예조에 지시를 하면 번잡하고 이런저런 시비가 생겨 골치 아프지요. 박부사께서 화연을 열면 내가 자연스레 참석하는 것으로 하면 어떨까요?"

순조는 이미 정치인이 다 되어 있었다. 정순왕후의 수렴과 김조순의 보위정치 속에서 복잡하고 답답한 나라 정치를 편법으로 펼치는 방법도 펼칠 정도였다. 화연의 개최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쌓이는 일이었다. 임금의 거동부터 화연의 실연, 그리고 마무리까지 수백 명의 인원이 동원되어 난리법석이 일어날 것이 분명한 탓에 순조는 그것을 피하자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