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끝나기 전 마치기로 한 '해서적당토포"는 여름이 지나도 진척이 없었다. 토포군은 별다른 성과없이 철수해야 했다. 산속에 숨어들어 꼬리조차 보이지 않는 산적집단을 불과 1사(師)도 되지 않는 부대로 소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토포군의 철군은 박종경이 지휘했다.

박종경은 성과 없이 철군해온 책임자 박기풍을 자신의 사랑방으로 불러 보고를 받았다. 박기풍은 오포장을 대동하고 왔다. 박종경의 위세는 하늘을 찔렀다. 벼슬은 판서에 불과했지만 임상옥과 손을 잡고 막대한 정치자금을 마련하면서 그의 정치적 힘이 김조순에 필적(?)할 정도였다.

조선의 정치판엔 김조순과 박종경을 통해야만 일이 된다는 말이 공공연했다. 박종경은 순조의 외삼촌이다. 정조의 후궁 중 한명인 가선궁 박씨가 박종경과 오누이다. 박종경의 아버지 박준원은 순조초기 정순왕후의 신임을 받아 어영대장을 역임한 적도 있으니 당대에 대를 이어 조정을 쥐락펴락하는 셈이다.

박종경까지 순조의 외척임에 뜨악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순조시대는 정순왕후 경주김문, 김조순의 안동김문, 박종경의 반남박문의 삼대 외척이 준동을 하며 서로 정치적 경쟁을 하면서 정치를 어지럽힌다. 이들 삼대 가문의 싸움에 순조말기에는 조득영을 선봉으로 한 조씨가문이 가세를 한다.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장인인 조득영의 가문이 외척으로 다시 합류한 것이다.

연구자들이 말하는 홍경래의 난의 원인이 안동김문의 전횡에 있다는 연구는 맞는 말이 아니다. 김조순의 정치적 영향력이 아직 미완성일 때 홍경래의 난이 터진 것이다.

"박대장, 무장이 한번 칼을 빼면 어찌해야 되나?"

"......"

박종경이 박기풍의 얼굴을 주시하며 물었다. 박기풍은 입맛만 쩝쩝 다시며 고개를 숙였다.

"왜? 말이 없으신가? 하긴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으시겠지. 츄츄."

박종경이 반말과 존대를 섞어쓰며 질책을 했다. 강직한 무장인 박기풍은 곤욕스런 모양이었다.

"저 ... 대감?"

"니놈은 나가 있어."

"대감..."

"어서 이놈아?"

오포장은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다 된서리를 맞고 장지문밖으로 나가 엎드렸다.

"대감, 제말씀도 들어보시지요."

"말씀? 그래 말해보게. 그 변명 좀 들어보세."

박종경이 박기풍을 쏘아보며 말했다.

"대감, 상대는 삼략(병법)하고는 거리가 먼 도적떼에 불과합니다. 출동한 반년동안 놈들 냄새도 맡지 못했습니다. 깊은 산중의 토굴에 은거해 겨울잠을 자는 놈들에게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은 소장의 책임입니다."

박기풍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변명과 책임의식을 한꺼번에 표출한 셈이다.

"무장으로 책임질 일이 있다는 것인가?"

"그러합니다 대감,"

"좋네. 박대장이 잘못을 안다하니 조정의 문책은 내가 막아주겠네. 일단 원위치하여 도성 치안을 다잡게. 그리고 자네?"

박종경이 박기풍을 다독이고 오포장을 지목했다.

"네 대감."

"자네는 말투가 바뀐 거야? "

"네에 무슨 말씀이신지?"

"왜? 실실거리지 않지? 하하 이리 들어와 앉아."

박종경이 두 손을 벌려 박기풍과 오포장을 감싸안으려는 자세를 취했다. 질책과 칭찬을 겸한 노련한 정치인의 전형적인 사람 다루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