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로(海西路)에 접어들면서 홍경래는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민가는 물론 역참과 관아의 아전들이 바짝 긴장하여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홍경래는 해서로에서 두번이나 검색을 받았다. 포도청에서 오포장이 검문통문을 발령한 것이 아니었다. 해서로에서 본 검문은 수배자를 추포키 위한 것이 아니라 암행어사를 탐문하는 것이었다. 홍경래는 황주에 들어서서 다시 검문을 받았다. 황주형청의 형리였다. 그의 검문은 노골적이었다.

"혹시 어사 아니시요?"

"뭐요?"

"어사 아니시냐 물었소?"

"오늘 이런 질문을 몇번째 받소. 왜 내가 어사로 보이시요?"

홍경래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눈매가 매섭고 매부리코에... 음, 용모파기와는 다르군요. 그런데 황주는 어쩐 일이시우? 아이까지 대동하고 말이요?"

형리가 홍경래를 유심히 살피며 물었다.

"박혁장에 다녀오는 길이라오. 이 아이가 남산대회 장원전에 올랐다우."

"오? 그래요. 신동이구료. 딸아이 잘두었구료. 그리고 소지품 좀 한번 봅시다. 마패 같은 거 나오면 안되잖수?"

형리는 안하무인이었다. 그는 암행어사를 찾기 위해 광분하고 있었다. 조선의 암행어사는 글자 그대로 암행하는 관원이다. 그러나 현실의 암행어사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하다. 자료 하나를 보자. 1822년 순조22년 함경도 암행어사로 나섰던 '박래겸'은 자신의 문집 '서수일기'에 암행어사로 나섰던 기간의 일을 일기형식으로 남긴 바 있다.

김래겸은 과거시험관을 발탁되어 있다가 승정원의 전갈을 받고 창덕궁 '희정당'으로 가 순조를 대면한다. 순조는 함경도로 가 일을 잘하라는 윤음(임금의 목소리)을 내리고 임명장, 업무지침,사목(事目), 마패, 유척(자)이 든 봉투를 준다. 박래겸이 암행어사로 발탁되어 국왕의 지령을 받은 것이다.

박래겸은 즉각 한양을 비밀리에 떠나야 한다. 그러나 박래겸은 한양에서 5일을 더 지낸다. 가족 친지는 물론 친구들의 송별회를 받는 등 태연하다. 박래겸은 허름한 옷에 갓을 쓰고 함경도 관내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주막이나 길가의 민가의 방을 빌려 허름한 잠을 자는 등 고생이 심하다.

5월 13일은 순안에서 출도도 하고 그날 밤을 타고 두 고을 지나 삼화에서 다시 출도를 한다. 출도는 일종의 행정감사다. 관장과 아전들이 자못 두려워하고 엄숙한 예의를 갖추는 것은 맞지만 춘향전 등에 보이는 그런 류의 어사출도는 아니다. 사실 조선의 암행어사는 관장을 갈아치울 정도의 파워는 없었다. 다만 군왕에게 관장의 행실을 직보하여 처리를 위임하는 정도였다.

박래겸은 125일간 서북을 돌아보고 왕에게 서계와 별단을 올린다. 서계는 관아의 사정과 관장의 잘잘못을 보고하는 보고서고, 별단은 어사가 본 지방의 고충에 대한 해결방법 등을 기록한 것이다. 박래겸은 이 기간 함경도 관찰사 '김이교'를 세번이나 만나 여흥을 대접받고 용돈을 얻어 쓴다. 일기 곳곳에 백성들의 고충을 기록하면서도 해당 관장과 태평하게 결탁(?)하는 모습이 아연하다. 더구나 김래겸은 자신의 행위에 조금도 부끄러움이 없다.

암행어사 발탁은 홍문관 사간원 사헌부와 더불어 조선관원들의 출세코스다. 군왕의 지근 신하인 삼사를 거친 행정과 암행어사를 거친 지방행정의 경험이 경관직(한양) 관료의 첩경이기 때문이다.
어사출도는 나름으로 흥미가 있다. 역졸들이 "어사 출도요!"를 외치면 해당 고을의 관아는 일단 공동화가 된다. 관장은 물론 아전 나졸 등이 모두 자리를 비우고 어사의 부름(?)을 기다린다. 이것은 군왕에 대한 예의다. 어사는 이 군왕의 위엄을 호가호위하며 한껏 기분을 낸다. 그것이 암행어사의 전부다.

암행어사는 선택의 순간 주변에 모두 알려진다. 어사가 떠난 임지의 모든 관장들이 알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다. 지역의 관장들은 아예 어사색출에 나선다. 어사와 인간적 관계가 있는 지역의 관장은 관찰사의 지시로 어사를 따라다닐 정도였다. 어사들은 이런 것을 적당히 즐겼다. 어사 박문수는 아주 예외적인 존재였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