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국이 되었는걸요?"

선아가 흥미가 있다는 듯 말했다. 시국(始局)은 대국이 시작됐다는 말이다.

"가만있어 보거라. 어디 한자리 만들어 보자꾸나."

홍경래가 대국장을 돌아다니며 일을 보는 집사를 붙잡고 사정을 말했다. 집사는 의외로 선선하게 나왔다.

"참가비만 내면 안될 거 없겠지요."

"참가비가 얼마요?"

"갑조는 닷 냥이고 을조는 한 냥입니다."

"닷 냥? 뭔 참가비가 그리 많소?"

홍경래가 갑조 참가에 닷 냥의 엽전이 필요하다는 말에 놀라 물었다.

"아따 한양의 국기를 뽑는 갑조대회에 닷 냥이 많습니까? 국기가 되면 기백 냥의 상금이 있는데요."

"기백 냥?"

홍경래는 입이 딱 벌어졌다. 장막 앞의 대진표 위에 현상 이백 냥이란 글자가 붙어 있기도 했다.

"돈이 없으면 을조에 나가보던지요?"

집사가 을조를 권했다. 한 사람이라도 참가자를 더 받으려 노력(?)하는 주최측의 의도가 엿보였다.

"좋소, 자 닷 냥이오."

홍경래는 집사의 손에 닷 냥을 쥐어주고 말했다.

"잠시만요."

엽전을 받아든 집사가 본부석으로 가더니 홍경래에게 와 한쪽에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조금만 있으면 상대가 올겁니다. 이름이 뭡니까?"

집사가 홍경래의 이름을 물었다. 대진표에 올릴 모양이었다.

"유선아요."

"네? 유선아라고요?"

"내가 아니고 이 아이가 둘꺼요."

"아 네...."

집사가 선아의 얼굴을 바라보더니 본부 자막으로 뛰어갔다. 조금있더니 구레나룻의 사내가 터벅터벅 걸어와 바둑판 앞에 앉았다.

"앉거라. 이 양반이 상대로구나."

홍경래가 선아의 등을 두드려주며 사내를 쏘아 보았다. 기분 나쁘게 생긴 사내였다. 바둑은 사배자 바둑이었다. 바둑의 형식은 대국자들의 협상에 따라 정해졌다. 서로 형식을 고집하면 바둑알을 한줌 쥐어 홀짝으로 정하는 방식이었다.

타악 !

"......?"

바둑판 위에 바둑알이 박히는 듯했다. 흑번인 사내가 내리친 바둑알 한쪽이 깨져 나갔다. 순간적으로 선아가 움찔했다. 홍경래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바둑판 앞에서 이리도 불손한 사람이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더구나 상대는 어린아이였다.

"머하노?  빨랑 두덜맹코로."

사내가 선아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며 말했다. 침까지 튀기고 있었다.

"허? 이런 인사를 봤나?"

홍경래가 혀끝을 차며 선아에게 착수를 하란 신호를 했다. 갑자기 날씨가 무더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