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경래는 한양에서 한동안 시간을 보냈다. 동지들을 모으고 있는 김재찬을 돕기 위해 은밀하게 움직이면서 하루는 남산에서 열리고 있는 바둑대회에 구경을 갔다. 남산 바둑대회는 성대했다. 그곳에는 정운창도 와 있었다.

"저 할아버지는...?"

"오? 서북에서 보았던 그 사람 아니냐?"

"맞아요, 정운창 그 사람이네요."

홍경래와 선아는 대회장의 중심 장막 안에 앉아 있는 정운창을 발견하고 말을 했다.

"저분이 좌장인 듯하네요?"

"그렇구나. 조선의 국기니 당연한 게지."

홍경래는 대회장의 좌장인 정운창이 놀랄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대회장은 커다란 장막이 대여섯 개나 쳐져 있고 그 안에는 바둑판이 연이어 놓여 있었다. 적어도 삼사십 조의 바둑판이었다. 바둑판 앞에는 모두 대국자들이 앉아 있었고 주변에는 구경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역시 한양은 다르구나. 바둑대회만 해도 이리 성대하고 푸짐하니 말이다."

홍경래는 사람들 속에서 선아와 떨어질까봐 손을 꼭 잡고 이곳저곳을 헤집고 다니며 대회장을 구경했다. 아직 대회는 시작 전이었다.

"쉬이! 전 오위영 대장 납시오."

그때 길잡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대회장 안에 운집하고 있던 구경꾼들이 좌우로 길을 터 가마가 들어올 자리를 만들었다. 그는  오군영 대장을 두루 역임한 이장오(李章五)였다. 이장오는 영조말에서 순조초기를 활동했던 무장으로 바둑과 도박에 취미가 있어 여러가지 일화를 남긴 사람이다. 이장오는 검계의 킬러 장붕익을 수하에 두고 조선 도회지의 골치거리였던 검계와 무리배들에 대한 지속적인 토벌을 통해 조정과 백성들의 인기를 얻기도 했다.

그러나 이장오는 바둑을 이용한 도박에 빠져 벼슬에서 파직된 후 끝내 재기를 하지 못하고 바둑대회를 여는 등 유유자적하며 살고 있는 중이었다. 이장오는 조선실록에 타인의 재물을 함부로 빼앗다가 강화도에 충군(充軍; 조선시대의 형벌. 죄를 범한 자를 억지로 군역에 복무시키는 제도) 당하는 기록이 있고 충청도 공주 우성면 대문 안에 그의 간단한 행적이 기록된 묘비가 있는 무덤이 남아있다.

"자, 포치하시요!"

바둑대회는 별다른 의식없이 이장오의 출석과 함께 시작되었다. 정운창은 이장오의 옆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그들이 앉아 있는 장막 앞에는 대국자들을 기록한 벽보가 붙어 있었다. 이미 대진표가 나와 있었다.

달그락.

달그락.

정운창이 포치(布置)를 하라는 대국 신호가 있자 여기저기서 통안의 바둑돌을 집어드는 소리가 들렸다. 커다란 장내가 숙연해졌다.

"선아야, 너도 한번 참석해 보겠니?"

홍경래가 선아를 보며 말했다. 햇볕이 따가웠다. 초겨울 날씨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제가요?"

"그래 한번 해보거라. 이것도 경험 아니겠니?"

홍경래가 선아를 부추겼다. 대국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으나 그것은 문제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