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어찌되고 있나?"

김재찬이 단도직입으로 물었다. 그들은 이미 혁명동지였다. 정2품관 출신의 고관대작이 서북지역의 한미한 사내와 나누는 대화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나 그들의 대화내용은 법궐(犯闕) 즉 반란이었다.

"착착 진행되고있나이다. 다만..."

"군자금이 문제겠지. 내 자네가 오면 주려고 좀 모아놓은 것이 있으이 잠시만..."

"저 대감 그리 급할 것은...?"

홍경래는 쇠뿔도 단숨에 빼라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장롱 속을 뒤지는 김재찬을 멀뚱히 바라보았다. 김재찬은 장롱 속에서 작은 나무상자를 하나 꺼내와 뚜껑을 열어 보였다.

"자, 꽤 큰돈일세."

"이건 은덩이가 아닙니까?"

홍경래는 상자 안의 은덩이를 보고 깜짝 놀랐다. 능히 수천 냥의 거금이었다.

"이거 모으느라 애좀 썼다네. 도움이 좀 되겠지?"

김재찬이 큰일을 했다는 듯 가슴을 펴고 말했다. 마치 서당에서 장원을 하고 부모에게 상장을 들고와 자랑을 하는 아이 같았다.

"되다마다요. 대감 정말 큰일하셨습니다."

홍경래가 상자의 뚜껑을 덮으며 침이 마르도록 사례를 했다. 김재찬은 흐믓한 듯 연신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반문을 했다.

"험, 그래 언제쯤 발동을 할 셈인가?"

"지금은 잠시 조정의 기찰을 피하는 중입니다."

"세상이 하수상하니 조정의 쇠와 경이 분주한 게지. 이럴 때가 기회일 수도 있네."

김재찬이 말하는 쇠와 경은 조정의 기찰망을 말한다.

"살피고 있나이다. 그리 멀지는 않을 겁니다."

"올커니, 내가 듣고 싶은 말이 그것일쎄. 더이상 묻지 않겠네, 조만간이라 그 말 아닌가? 하하. 으음..."

김재찬이 가슴속이 뜨거워진다는 듯 심호흡을 했다.

"아참 그리고 말일쎄. 요즘 서북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거 아나?"

"설점 말인지요?"

홍경래가 설점(設店)을 말했다. 설점은 광산을 말하는 것으로 서북 곳곳에 금은광산이 설치되어 바람이 일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을 이용하면 어떨까?"

"광산무리배들을요?"

"그 사람들 유용할 게야? 그렇지 않은가?"

홍경래는 김재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홍경래는 이제껏 그들을 염두에 두지 않았었다. 온갖 잡인들의 조직인지라 규율과 비밀관리 등에 문제가 있을 것이 뻔한 탓이었다.

"워낙 오합지졸이고 돈에 몰려다니는 자들인지라 비밀관리가 염려되어 생각해보지 않았었거든요."

"그럴 수도 있겟지만 역으로 생각을 해보게. 그들은 이판사판인 사람들 아닌가?"

"이판사판이라고요?"

홍경래는 침을 꿀꺽 삼키며 김재찬을 바라보았다. 큰 군자금과 함께 뜻밖의 지략(知略)을 얻은 셈이었다. 일진이 좋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