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는 바로 정사다( 三昧此正思)

-이규경 (오주연문장산고에서)

한양 서강에서 다시 배를 갈아탄 홍경래 일행이 금강의 강경포구에서 내려 임천을 지나 홍산현에 도착한 것은 용천을 떠난 지 보름이나 지난 뒤였다. 도보로 왔다면 천오백 리 길로 한 달 이상이 걸릴 길이었으니 반쯤 시간을 절약한 셈이다.

홍산은 '저산팔읍'의 한 곳으로 삼배와 남면들판의 쌀이 유명한 곳으로 홍주목사의 관리를 받는 지역 중에서 부읍으로 손꼽는 고시(古市)였다. 무량사는 홍산 외산면에 있는 만수산(萬數山) 계곡에 있는 천년고찰로 임진왜란 당시 관군에 의해 완전 파괴되어 있다가  영조 때에 와서야 겨우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한 탓에 깨끗하고 정갈한 절이다.

"홍대인?"

혼자서 절을 지키고 있던 '환성'스님이 홍경래를 보고 합장을 하며 3층석탑 아래로 뛰어나오며 반겼다. 헤어진 지 오년 만이었다. 그들은 청룡사에서 처음 만나 의기가 통한 사이었다.

"그간 잘 계셨는지요?"

"하하, 승에게 편안 안편안이 어디 있겠소이까? 먼길을 나섰습니다 그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환성은 홍경래 일행을 요사채로 안내했다. 요사채는 대웅전과 조금 비켜서 있었다. 세 칸의 단출한 건물이었다.

"선아야 절을 두루두루 구경하거라. 니가 만나고 싶어하던 금오선생도 만나뵙고?"

홍경래가 선아를 환성에게 인사를 시킨 후 경내 구경을 권했다. 배멀미에 고생을 하던 선아는 강경포구에 내리자마자 활기를 찾아 씩씩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선아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 대웅전으로 갔다. 대웅전 안에는 엄청난 크기의 미륵괘불이 걸려 있고 그 앞에 삼존불이 금빛찬란한 모습으로 좌대 위에 앉아 있었다.

"그래 어인 일이십니까?"

환성이 방안에 앉자마자 질문을 했다. 홍경래의 발걸음이 한가하다 생각된 모양이었다.

"잠깐 잠행에 나섰습니다. 조정의 기찰이 온통 서북으로 쏠려 있어어요."

"오? 그랬군요. 자 우선 차라도 한잔 하시지요."

환성이 두툼한 탁자 위에 진설되어 있던 다기(茶器)를 늘어놓고 어린 동자승이 데워지온 물을 따르며 말했다.

"절이 많이 번창했군요?"

홍경래는 십수년 전 경기 충청도를 무상으로 돌아다닐 때 와본 적이 있는 무량사를 기억하며 물었다. 그때보다도 사찰의 규모가 커져 있었다.

"조정의 감시가 풀린 후 절이 제법 규모를 갖추기 시작한 거지요."

"하하, 이몽학의 원귀가 이제서야 다 걷힌 셈인가요?"

홍경래가 갑자기 이몽학을 거론했다. 무량사는 서북의 청룡사와 비슷한 절이었다. 무량사는 호서내륙인 부여 청양 보령의 꼭지점에 있는 거찰로 이백년전 전 조선의 화약고로 등장한 적이 있었다. 역사는 이 사건을 이몽학의 난으로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