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성 남문 앞에는 원사대 터(元師臺地)가 있고 정주성도에는 지명이 보인다. 원사대터는 고려말 원나라와 손을 잡고 있던 고려 귀족 최유 등이 원에 있던 충숙왕의 아들 덕흥군을 옹립하고 심양에 있던 원나라 군대 1만을 지원받아 압록강을 건너 개경을 압박할 때 최영 이성계 등의 고려무장들이 이끌고 간 고려군과 충돌을 벌인 곳이다.

달천 주변에서 치열하게 벌어졌던 전투는 고려군의 승리로 끝나고 최유 등이 척살되면서 고려는 원나라로부터 자신감을 갖는 계기가 된다. 역사적으로 이 사건을 계기로 고려는 원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니던 그간의 정치력을 회복하고 원과 대등한 입장에 서게 된 것이다.

정주관아의 객사를 하나 얻은 오포장은 정주읍내에서 금방 홍경래의 소식을 들었다. 읍내의 허낙생이란 인물이 홍경래와 바둑 도박을 벌여 천금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포장은 허낙생을 수소문해 그의 집으로 찾아갔다. 정주부호답게 고대광실에 살고 있었지만 생긴 것은 비루먹은 개 모양의 허섭스레기 같은 인상이었다.

"나를 어찌...?"

"호호, 별건 아니고요. 몇가지 물어볼 것이 있기에 왔네요."

"무얼 말이오? 이보게 좌막, 이분 포청에서 오신 분 맞나?"

허낙생이 길안내로 따라온 정주 형리를 보고 물었다. 오포장의 모습을 보고 포청의 서슬퍼런 포장으로 생각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좌포청 포도부장나리가 맞습니다요. 저는 그만..."

형리가 오포장의 눈치를 살피며 자리를 떴다.

"호호, 왜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시나요? 안주에서도 그런 사람이 한둘 있었지요."

오포장이 안주에서 손을 보아주었던 유지들을 거론하며 허낙생을 위협했다. 허낙생도 그 소문을 들어 알고있는 듯했다.

"흠흠, 그래 무슨 일이신가?"

허낙생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조금은 기가 꺾인 모습이었다.

"홍가를 언제 만나셨나요?"

"홍가? 홍경래를 말 하시나?"

"호호 그래요. 언제 그를 보았지요?"

"험, 그걸 왜 물으시나?"

"호호 질문은 제가 한 줄 아는데요? 생원님은 대답만 하세요. 언제 홍가를 만나셨죠?"

"험, 달포쯤에 우리집에서 보고 엊그제 용천에서 만났다네."

"엊그제요?"

"그렇다네. 그런데 그를 만난 것이 무슨 문제라도...?"

"호호,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는지요. 그런데 생원 어른?"

오포장이 대청 마루 끝에 앉아 허낙생을 주시했다. 넓은 대청과 방문 위에 세심제(洗心齊)란 현판이 걸려 있었다. 시골 부호의 수준을 한참 뛰어넘는 집임을 알 수 있었다.

"그래, 말씀하시게."

"홍가와 박혁으로 재미를 보셨다고요?"

"......?"

"아, 도박을 탓하려는 건 아니고요. 내기는 이기고 봐야지요. 호호, 안그런가요?  생원 어른?"

오포장은 허낙생을 얼르고 빰을 쳤다. 의외로 홍경래와의 대면이 쉬울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