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파국(破局)

踞坐海鴨山 (좌거해압산)

洗足腰浦江 (세족요포강)


압산은 용천 다미동 앞바다에 있는 작은 돌섬이고 요포강은 다미동을 돌아 서해로 들어가는 압록강 하류의 이름이다. 바닷가에 앉아 압섬을 바라보고 요포강에 발을 씻는다는 시(詩)다. 자못 호연지기가 느껴지고 문정(文精)도 적절하다.

이 시는 홍경래를 기록하는 수많은 기록들 속에 있는 거의 유일한 홍경래의 저작(?)이다. 홍경래가 여덟 살 때 아버지와 숙부 앞에서 지은 시라는 것이다. 필자는 이 말을 믿지 않는다. 필자가 파악한 홍경래는 여덟 살 때 이 정도의 시를 지을 수 있던 문재가 아니었다.

홍경래의 청춘은 울분과 도모, 그리고 무엇인가를 준비하는 삶이었지 문사연하고 정연한 모습은 아니었다. 홍경래는 사실 글을 잘 몰랐던 듯하다. 그가 사마시에 입격할 정도의 실력과 정감록 풍수 등에 일가견을 갖고 있었다는 말들도 과장으로 만들어진 황탄한 것들이다.

홍경래의 사건 기록들 속에는 정감록과 풍수 지술서 등을 이용한 내용들이 나온다. 그러나 정감록의 원용과 풍수나 지술서 등을 이해하는 홍경래의 이론적 배경은 한마디로 유치하기 이를 데 없다. 홍경래 개인과는 잘 연결되지도 않는다. 홍경래가 양반 신분이었다는 말이나 과거공부를 한 선비였다거나 풍수 지술서 등에 실력이 있었다는 말들은 믿을 만한 근거가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드디어 바둑이 시작되었다.

바둑은 장점(將點)바둑이었다. 지난번 대국에서 사배자(四配子)바둑으로 패했던 김밀수가 이번에는 장점바둑으로 하자는 안을 내놓았고 정운창이 수긍을 해 대국방법이 결정된 것이다. 허낙생, 김신겸 일행은 이십 명이 넘었다. 의주가 활동 지역인 김신겸의 수하들이 몰려온 탓이었다.

바둑은 마당 한가운데 설치한 장막 안에서 시작되었다. 장막 안에는 두 대국자와 심판격인 장중(帳中) 한 사람이 더 들어갈 수 있었다. 담배 천오백 근이 걸린 내기바둑이었다. 장중이 간혹 장막을 나와 장막 바깥에 놓여져 있는 바둑판에 장막 안의 바둑 기보(碁譜)를 놓아주곤 들어갔다. 마당의 여러 곳에는 대여섯 개의 바둑판이 놓여 있고 수많은 구경꾼들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끄응!  한 시각에 다섯 수도 진행이 안되는군."

홍경래가 들마루에 놓인 바둑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 옆에는 우군칙과 선아가 앉아 있었다. 점심을 먹고 시작한 바둑이 저녁 무렵이 다되어도 불과 십여 수가 진행될 정도로 더뎠다. 장고 중의 장고였다.

"형님, 천금이 걸려 있지 않습니까?"

우군칙이 손에 땀이 나는지 손바닥을 평상 위에 문지르며 말했다. 이미 담배 오백 근을 잃은 경험이 있기에 더욱 긴장이 되는 모양이었다.

"간이 쪼그라드나?"

"네 형님, 솔직히 간이 오그라드네요."

'하하, 천하의 협객이 그래가지고 어디다 쓰겠나? 평소에 안경무를 들먹이더니 그 기백은 다 어디간 거야?"

"아, 형님, 안경무도 이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을 겁니다."

우군칙이 말하는 안경무(安景務)는 유몽인(1559-1623)의 '어유야담'에 기록된 인물로 조선의 한량의 대명사다. 안경무의 기록은 바둑과도 연관이 되기에 원문을 소개한다.

가정(1522-1566) 연간에 안경무가 있었다. 세상에 보기 드문 용기가 있었지만 사람들에게 작은 용기만 보여주고 큰 용기는 보여주지 않았다. 어느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큰 냇가에서 바둑을 두게 되었는데 한 손님이 냇가 한가운데의 바위를 가리키며 세상에서 당신이 용기가 있다고 하는데 저 바위로 뛰어올라가 앉을 수 있겠소? 라고 물었다. 내는 엄청난 물살이 거칠었고 바위는 까마득할 정도로 멀었다. 안경무는 이렇게 대답을 한다. 내가 날개가 없거늘 어찌 저곳을 날라가 앉을 수 있습니까?

손님들이 바둑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려는 순간 안경무를 찾으니 그는 이미 그 바윗돌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