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량이 전부 얼마나 되지?"

홍경래가 만오에게 물었다. 자신도 알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홍경래는 만오를 볼 때마다 그 질문을 했다.

"능히 일사를 무장시킬 수 있는 양입니다."

"오! 그렇지 일사라...."

홍경래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찬탄을 했다. 일사(一師)는 4천 명에서 5천 명 사이의 군대로 조선 5군영 중 한 군영의 편제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만오가 흡족한 표정으로 홍경래를 바라보았다.

"아닐쎄 아니야. 이것만으로는 턱도 없네. 우리가 거사를 했을 때 첫번째 마주칠 산이 있네. 그 산이 무슨 산인지 아나?"

"첫 전투 말입니까?"

"맞네. 아마 안주 영변에 전개되어 있는 병마군일꺼야. 우리들의 코앞에 있는 부대지. 일사로는 그들도 장담치 못하네."

평안도는 국방의 요충지로 의주의 북병과 안주 영변에 북방전력의 전부가 모여 있었다. 특히 의주에 군마가 집결한 것을 싫어하는 청나라의 영향으로 정예군이 안주 영변선에 방어선을 치고 있고 노회한 관장들이 책임자로 내려와 있어 항상 일정한 군사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실제로 홍경래가 봉기했을 때 안주에서 1천, 영변에서 7백의 군대가 곧바로 출격하여 홍경래군의 남진을 막고 한양에서 순무영군이 발대할 시간을 벌어주어 홍경래의 야망을 꺾기도 한다.

"그것들 오합지졸들 아닙니까?"

"오합지졸이라고?"

"북병은 물론이고 도내 전군영이 군기 문란하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 아닌지요?"

"그래도 군영일쎄. 그들은 기본 조련이 되어 있어. 전시에 군기를 세우는 것은 똘똘한 장수 한두 명이면 되는 일,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닐쎄."

"......!"

"허나 만오, 그렇다고 기죽을 일은 아니네. 우리에게는 대의가 있어. 민심 말이야."

홍경래는 만오의 손을 한번 잡아주고는 경내를 한바뀌 돌아 마당에 있는 3층 석탑 앞에 섰다. 단아하고 육중한 모습의 탑이 오랜 풍상의 이끼를 덮어 쓰고 서 있었다.

"장군, 저 아이는 바둑판 앞에서 꿈쩍도 않는군요."

"나의 말을 듣지 않으려 저러는 거야. 어리고 작아도 생각이 있는 아이지."

"장군의 말에 비밀이 많다는 걸 알고 일부러 저런단 말인지요?"

"하하. 그렇지. 이달 그믐에 모처에서 수십 인의 동지들이 모인다네. 만오께서 불공을 드려 주셔야겠네."

홍경래는 만오에게 말을 한 후 석탑을 천천히 돌았다. 새삼스레 백팔 배를 할 것인가. 삼천 배를 올릴 것인가. 불상 한점 없는 폐사에서 딱히 공덕을 쌓을 장소도 마땅치 않지만 만오가 승이고 탑이 부처이기에 홍경래는 나즈막한 걸음으로 탑돌이에 나선 것이다.

靑龍刀 

壁上靑龍空自鳴.

何時俑匣適群英.

乘風快渡長江去.

殺盡群匈複大明.

벽에 걸려 있는 청룡(검)이 운다. 어느 때나 영웅은 갑주를 입고 바람처럼 강을 건너 흉도를 짓밟고 대명을 회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