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봉사가 신도 모임의 통문을 각지로 돌리는 사이 안주에서 홍경래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그는 나대곤이었다.

"아니, 나행수?"

"대인, 이럴 수가 있습니까요?"

나대곤은 홍경래를 대인으로 칭했다. 나대곤은 홍경래의 직계인 홍단 소속이 아니었다. 그러나 홍경래가 자신의 은거지 출입을 허락한 몇 안되는 동지 중의 한명이었다.

"때가 안좋을 때 이렇게 돌아다니면 어찌한단 말이요?"

홍경래가 정색을 했다.

"한양에서 내려온 미친 놈을 혼을 내줘야 하겠습니다요."

"나행수?"

홍경래가 나대곤을 진정시켰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있었다. 그는 도고상이면서 뱃사람이었다. 안주 대정강 하류에 거점을 두고 의주 개성 한양으로 드나드는 화물은 모두 그의 배를 이용할 정도였다.

나대곤은 사공(沙工) 출신으로 큰배를 여러 척 이끄는 상단의 행수가 된 인물이다. 사공이란 말은 선장을 이르는 말로 조선시대 가장 큰배인 세곡선의 책임자를 말한다. 사공이 훗날 작은 나룻배의 주인을 이르는 말로 바뀐 것이다.

조선은 육로가 잘 개척된 나라였으나 쌀이나 우마 등 부피가 큰 화물들은 운송수단의 미발달로 수로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의 화물선은 한강 서강에 기반을 둔 경강상인들의 주요 사업이었다. 경강상인들은 삼남과 한양을 연결하는 해로를 개척하고 한번에 백미 2천 석을 운반하는 대형 세곡선을 건조하여 조정의 세수미 운반을 책임 맡아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다.

대형선박의 건조와 운용은 잘 훈련된 선원들이 필수였고 경강상단은 사공(선장) 타수(운항사) 지남(항해사) 놋군(잡역부) 등의 육성에 많은 노력을 경주, 비약적인 항해력을 키웠다. 경강상단은 숙종말기에 와서 조선해운의 숙원이던 장산곳 항로를 개척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한다. 장산곳 바다는 안흥, 칠산도 앞바다와 함께 마의 바다로 일컫는 곳이었다. 장산곳 바다는 조선 내내 항해 금지가 내려진 곳이기도 했다.

이런 경강상단도 영조 30년 칠산도 앞바다에서 한번에 3백 척의 배를 잃는 대 해난사고를 당하고부터 퇴보하기 시작해 조정은 정조 순조 초기 세곡미의 운반에 많은 애로를 겪는다. 대형 선박의 건조와 운용을 감당할 만한 경제력과 운용력이 칠산도 앞바다에서 한꺼번에 꺾인것이다.

이후 조선의 바다는 세곡선의 무덤이 된다. 소형선박들이 거듭 난파를 당해 삼남에서 올라오는 세곡의 반을 바다에 수장하는 해가 있을 정도였다. 참고로 경강상단이 운용하던 선박의 크기는 폭이 4미터, 길이가 20미터에 이르고 사공 이하 선원이 20명에 이른 것으로 기록에 보인다.

"꼭 내시 같은 놈이 얼마나 비위를 긁는지 죽이고 싶더라니까요. 돈도 오백 냥이나 뜯겼습니다요."

"오백 냥이나?"

"미친놈이 갑자기 들이닥쳐 장부를 모두 압수하고 지난 십년 간의 세금포탈을 문제 삼겠다는데 장사 있습니까요? 더 환장하는 건 그놈에게 손찌검까지 당했습니다요."

"손찌검을 ?"

홍경래는 나대곤이 흥분을 하는 이유를 알 만했다. 홍세태가 전하는 김영철전은 군마 한 필을 전쟁에서 잃고 돌아온 죄로 말값 200냥을 변상하고 있다. 나대곤은 말 두 필이 넘는 돈을 뜯기고 덤으로 얻어맞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미친놈이 따로 있습니까요? 박상수는 아예 피떡이 되었답니다요. 반하을 한 모양입니다요. 그놈 절대로 그냥 놔두면 안됩니다요."

"허...?"

홍경래는 자세를 바로 앉으며 헛웃음을 지었다. 오포장이 물건이란 말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상상 외로 당찬 인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