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순이 말한 구일식은 일식을 말하는 것이다. 조선은 중국의 영향으로 일식과 월식 현상을 국가의 중대 변고로 인식하고 이 현상이 나타날 때면 국조의례의에 의해 군례(軍禮)로 일식을 구한다는 의미의 구일식을 거행했다. 월식이 나타날 때도 마찬가지다.
조선실록에 구일식의 사례가 인조 5년의 기록에 나온다.

- 일식이 시작되는 날을 관상감에서 지목해 오면 그날 근정전 섬돌 위에 단을 설치하고 그 앞에 향안을 설치한다.

전악(典樂)은 북 3개를 섬돌 위 남쪽에 두고 청색(동) 적색(남) 백색(서) 방향으로 놓는다. 병조정랑은 청색휘(麾) 적색휘(麾) 백색휘(麾)를 북쪽에 늘어놓고 세 가지 병기 모(矛) 극(戟) 월(鉞)을 서쪽과 북쪽에 세운다.

해가 지기 전 병조는 오위(五衛)의 군대를 도열시키고 대신들은 소복을 입은 채로 근정전 밖에 동서로 서고, 사금(司禁)은 기복을 갖추고 사정전 합문 앞에 대기한다.

좌통례(左通禮)가 중엄을 갖추면 왕이 소복을 입고 사정전으로 거동한다. 해가 지기 직전 좌통례가 왕의 여(輿)를 모셔온다. 왕이 제단에 이르러 해를 향해 앉는다. 관상감이 왕에게 하늘의 변고를 알리고 향을 피우면 고수(鼓手) 3인이 각자의 북을 친다. 이때 창을 든 3인도 각자의 창을 하늘을 향해 치받는다. 드디어 해가 제 모습을 드러내면 북과 기창수의 행동도 멈춘다. 왕이 내전으로 돌아가고 대신들도 자리를 떠난다.


해와 달 그리고 지구의 운행이 야기하는 일식과 월식 현상을 변고를 알리는 하늘의 조짐으로 파악하고 사악한 기운이 해를 범하는 것을 엄중한 군사적 힘으로 물리친다는 내용의 구일식에서 보듯, 조선은 극성한 성리학의 가치체계 속에서도 아직은 정신적 미완의 세계 속에 살고 있었다. 

"부원군께서는 구화식을 반대하시는구료?"

왕이 김조순에게 물었다.

"전하, 정관정요를 생각해 보소서? 신하의 조문을 가려는 태종을 길일이 아니라하여 막는 신하에게 태종은 무엇이라 했나이까?"

김조순이 당태종과 신하들이 나눈 담소를 중심으로 엮어 놓은 책인 정관정요를 거론했다. 정관정요는 조선 국왕들의 필독서 중의 하나였다.

"아, 생각납니다. 태종은 음양보다는 진심이 먼저라 했지요."

"전하, 현명하십니다. 진실로 그렇습니다. 음양은 최선이 아닌 것, 최선이 아닌 음양보다 진심이 우선이라면 구화식을 권유하는 관상감의 주청에 좋은 비답이 될 듯합니다."

"하하, 알았소. 부원군의 말이 곧 나의 말이오. 세 분께 찬(餐)을 내릴 터이니 사양치 마시고 들고 가시오."

왕이 세 명의 대신들에게 밥과 술을 내려주고는 내전으로 갔다. 편전에는 굵은 황촛불이 반쯤 타들어 가고 있었고 문밖은 어둠이 내려 있었다. 저녁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부원군 대감, 서북지방이 어수선하다는 소리 들으셨는지요?"

박종경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김조순에게 물었다.

"어수선한 거야 8도 어디는 안 그렇소이까?"

"그런 것이 아니라 해서승룡(海西陞龍)이란 참언이 돈다는 것이오이다."

"형판? 그게 무슨 말이오? 북쪽에서 반란이라도 일어난다는 말이오?"

김조순의 언성이 높아졌다. 차분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유명한 사람이었으나 반란이란 말에 흥분을 한 것이었다.

"용이니 진인이니 하며 해서는 물론 서북 일대의 참언이 떠돌고 있다는 것입니다. 대감, 방도를 강구해야지 않을까요?"

박종경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그가 수장으로 있는 형조에는 좌우포청과 8도 관영에서 올라오는 국체(國體)에 관한 정보와 각종 죄인들의 절목이 모여들게 되어 있었다.

"허허, 그놈의 정감록이 또 문제군. 그것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북쪽에 또 어떤 정신 나간 인사가 나온 모양이구려."

김조순이 진인(眞人)이니 정도령을 운운하며 혹세무민하다가 시골 향반의 무지렁이들만 떼로 죽어 나가던 정감록 사건들을 떠올리며 혀를 끌끌 찼다.

실제로 영정조 연간에 정감록을 내세운 변혁 사건이 10여 건이나 발생한 바 있었다. 사건이라고 해야 거의가 실체 없는 해프닝으로 영정조는 결말을 보고 받고 어이없어 하며 주동자만 처벌하고 나머지를 방면한 적이 있었다. 거의가 정감록의 비결을 핑계로 시골의 부자들을 사기 쳐 재물만 탐한 사건들이었다.

"부원군 대감, 이번은 조금 다른 듯합니다."

"다르다니오?"

"서북은 예로부터 위험한 곳 아니오이까? 그런 곳에 승룡의 참언이 돈다면 경계를 해야지오?"

"하하, 하긴 영종께서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기는 하지오."

"영종대왕께서요?"

박종경이 영종(英宗)을 물었다. 영종은 영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우리가 알고 있는 영조는 원래 영종이었다. 정조 또한 정종(定宗)이 본래의 시호였다. 정조 사후 김조순이 정조의 시책문을 쓰고 묘호를 올린 바가 있다. 시책문은 정조의 일대사를 두루 쓰고 끝을 이렇게 마치고 있다.

- 하여 공의에 따라 감히 이 말씀을 올리고 신으로 하여 옥책을 만들어 존호를 '문성문열성인당효자'라 하고 묘호를 정종(定宗)이라 하옵니다.

그랬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영조 정조라는 말은 대한제국 이후 고종이 선대를 다시 정리하며 새로 추종한 이름인 것이다. 조(祖)는 국가에 공이 있고 종(宗)은 덕이 있는 왕이라 그렇게 한다는 등의 말이 역사 속에서 얼마나 가볍고 허접한 것인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