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소사의 자전적 토로는 계속된다.

비록 몸의 고달픔은 조금 덜했으나 가노의 몸으로 살아야 하는 4년간은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나마 그것도 복이라고 주인 정씨가 관아의 공금을 횡령하다 적발되어 가산을 몰수당한 바람에 우리 모녀도 가산의 일부인 탓에 관아에 몰수되어 다른 사람에게 팔려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동력은 없고 입만 있는 우리 모녀를 사갈 사람이 없었습니다. 우리 모녀는 길에 버려진 겁니다.

어쩔수 없이 거지로 떠돌다가 어떤 움막 하나를 발견하고 그곳에 살면서 품이라도 파는 날이 있으면 먹고 그렇지 못하면 굶는 생활을 계속했습니다. 어쩌다 품값이라도 받는 날이면 굴뚝에 가느다란 연기라도 피어올릴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몇번에 불과하다보니 자살을 결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허나 어린 딸을 보노라면 차마 그럴수도 없었지요.

차가운 땅바닥에 누워 대성통곡을 한 날이 많습니다. 반은 미친 듯 반은 죽은 듯 그해 겨울을 살았고 다음해는 더욱 끔찍했습니다. 임신년은 동짓달부터 우리모녀가 역병에 걸려 앓아 눕게되엇고 약은커녕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고 먹을 것도 땔 것도 없어 고스란히 굶주리다 죽는 줄만 알았습니다.

자꾸만 식어가는 체온을 모녀가 부둥켜 안고 마직막까지 나눠가며 운명을 기다리는데 정말로 하늘의 도움인지 이웃마을의 임씨 어머니의 도움으로 그 이듬해 계사년(癸巳年) 2월을 맞습니다.

(후쿠자와유키치-이규태역-)

유씨는 옥천에서 죽을 고생을 하다가 한 아전의 도움으로 다소 나은 생활을 한 듯하다. 그러다 아전이 몰락한 후 거지신세가 되어 이리저리 유리걸식을 하다가 아산 부근에 도착하여 움막 생활을 한 모양이다. 유씨는 한양에서 옥천을 거쳐 아산으로 올 때까지는 어린 자식을 잘 건사한 모양인데 그 아이를 이쯤에서 잃게 된다. 참으로 어머니는 강하고 위대하다는 말이 실감난다.

유키치는 유씨가 가장 고생을 하던 아산생활 중 도움의 손길을 준 모양이다. 아산으로 사람을 보낸 것이다. 이때가 1894년쯤이다. 이때 일본 외무성은 주일 조선대사관에 김옥균 처자를 잔혹하고 비인도적으로 대하지 말라는 문서(일본외교문서 27-1 334호)를 명치 27년 5월28일자로 보내기도 한다. 이 문서도 유키치의 압력을 일본정부가 들어준 것이다.

그러나 조선조정은 겉으로는 그렇게 하겠다면서 속으로는 전혀 엉뚱한 결과를 내놓는다. 이때 중국 상해에서 살해된 김옥균의 시체가 국내로 들어왔는데 그 시체 처리를 둘러싸고 의정부에서 회의를 해 능지처참(陵遲處斬) 할 것을 군왕에게 보고한다. 시체를 다시 자르고 저미고 목을 베자는 것이다. 군왕은 이를 허락한다.

이것이 세기말에 처했던 조선의 모습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조선의 마지막 왕이었던 고종의 꼬라지다. 고종은 수년 후에는 김홍집의 주청을 받고 김옥균을 신원하라는 명도 내린다. 그저 도장만 찍는 군왕 좌도 우도 좋다는 군왕, 세상의 모든 모순점에도 가납한다는 도장을 찍는 군왕이 존재하는 희극적인 나라로, 한때 영화를 자랑하던 조선이 추락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