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식은 갑신정변에서 한일합방까지를 속터지는 마음으로 지켜보다가 1911년 북간도의 한 제자 집에 은거하며 '몽배금태조'라는 소설을 써 조선 멸망의 원인을 무너진 국가체계와 나약한 지식인들 속에서 찾아낸다. 박은식은 신채호와 더불어 선구적인 민족사학자로 알려진 사람으로 상해임시정부의 2대 수반을 역임한 간단치 않은 인물이다.

(소위 조선의 학자들은 도덕(세상)이 진화하는 정도를 모르고 아직도 한몸만을 다스리고 한 가정만을 다스리는 것을 도덕심으로 알고 국가와 민족의에 대한 공덕심과 공익심이 전혀 없는고로 나라가 이 모양이 된 것은 아닌가. 그래놓고도 나는 아무 잘못도 죄도 없다고 하니 과연 옳은가?)

박은식은 조선의 멸망의 원인을 사회 구성원의 무기력으로 본다. 특히 그는  사회지도층의 이타심이 공동체 전체의 무기력을 가져온 가장 큰 원인으로 파악한다.

(조선의 학자들이 공덕과 공익을 발하지 못한 죄가 전혀 없지 않지만 단지 시대에 무지했던 사정을 돌아보면 오늘 마음이 서늘하고 간담이 흔들려 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과거에는 조정에 들어가기가 어렵고 학문에서도 금하는 것이 가혹하여 백성들이 위의 불법을 간하면 대역부도요 선비가 언론(言論)을 거스르면 사문난적이 되니 이런 때에 누가 공덕과 공익을 위해 몸을 버린다는 말인가.)

사회지도층의 이타심은 '서자서아자아(書自書我自我)'다. 나는 이익을 좇아 살아도 세상에서는 공자왈 맹자왈을 뇌깔이는 희극적인 사상으로는 사회와 국가를 발전시킬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조선후기는 그랬다. 이 현상은 성리학의 일방적이고 단선적인 독주가 불러온 폐해로 보인다.

(이런 이유로 백성은 관에 꼼짝못하고 선비는 감히 세상에 간언하지 못하니 세상이 썩어 문들어져도 그저 옛것만을 찾으며 세상을 이롭게 하는 것을 단 하나도 발명하지 못하니 무슨 말을 할 것인가.)

박은식은 김옥균이나 김홍집 김윤식 등과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현실을 억압하는 사상과 현실이란 기득권을 단 한줌도 버리기를 거부하는 사회지도층의 이기심과 그에 도전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사회적 풍토를 비판하는 점에서 그렇다.

이곳에서 김옥균의 탁발함이 주목된다. 사고하고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행동이 따라주지 못하기 마련이다. 학자들의 삶이 대부분 그렇다. 허나 김옥균은 이 점에서 남들과 구별된다. 김옥균의 평가가 상이하지만 행동하는 지성이란 평가에서는 여야(?)가 대체로 공감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