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조선은 치안이 없는(?) 나라였다. 치안이 없는 나라에 법이 있을 턱이 없었다. 조선은 양반 토호 그리고 관리들의 세상이었다. 그들은 백성이라는 논밭에 똥오줌을 뿌리는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그저 수확만 노리는 탐욕의 화신들이었다.

이 탐학의 정치 속에서 조선의 백성들이 찾아낸 것이 '단치'라는 도전적 방법이었다. '단치'는 공갈치다. 단죄하다 등의 의미로, 노골적인 폭력의 등장을 말한다. 단치에는 죽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영웅의 희생이 필요했다. 영웅은 조선곳곳에서 출몰햇다. 전국에서 백성들을 괴롭히는 토호들을 죽이고 관가에 자진출두하여 참수를 당하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다. 백성들은 이들 단치자들을 영웅시하고 그 가족을 십시일반 도우며 허전(?)한 나라를 살아갔다.

부패한 관리들과 지역 토호들은 백성들의 단치저항에 일정 부분 겁을 집어먹은 점도 있어 스스로 경호를 강화하던지 아니면 탐학의 도를 조금 누그러트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있었다.

"대원위와는 조금 거리를 둬야합니다. 그래야 우리 개화당이 산다니까요?"

윤웅렬이 김윤식과의 화해를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대원위와 척진 사람과 손을 잡으면 우리 또한 대원위와 척을 진다니까요?"

홍영식이 조금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홍영식은 강단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가 김옥균에 적극 동조 갑신오적(甲申五賊)의 한사람이 된 것도 이유가 있다. 갑신오적이란 말은 정변이 끝난 후 조정이 사건을 처리하며 주요인물 다섯 사람에게 내린 칭호(?)로 김옥균 박영효 홍영식 서광범 서재필이다.'

"대원위야 조선에 없으니 무슨 힘을 씁니까? 지금은 김윤식과 손을 잡아야 한다니까요?"

"허허, 윤공? 운양에 붙어야 뭐 떨어지는 거라도 있어 그럽니까?"

"이런 ? 무슨 말이 그렇소이까? 과연 청족이 맞소이까?"

윤웅렬은 지지 않았다. 청족(淸族)은 명문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이 자리에서 무슨 청족이 나옵니까? 윤공은 그 개도 물어가지 않을 자격지심부터 버려야 합니다."

"뭐야?"

홍영식이 급기야 윤웅렬의 자격지심을 건드렸다. 이들의 싸움은 김옥균이 나선 후에 끝났으나 이 또한 조선 개화당의 현실이었다. 꿈은 높은 곳에 있었으나 몸은 이토록 적나라하고 초라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