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수의 상가는 졸지에 개화파의 회합(?) 장소로 변했다. 원수지간도 상례에는 예의를 표시하는 것이 조선의 예법인지라 유동수의 집에는 조선의 거의 모든 개화파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사건은 오리무중이었다. 포도청은 이미 수사기관으로서 권위와 능력을 잃은 지 오래였다. 김옥균은 상가로 모여든 개화파 인사들과 자연스럽게 당의 진로를 논의했다. 살인사건에는 대처를 못하면서도 포도청은 사람들의 모임은 염탐해 내려해 함부로 모일 수도 없었다. 상가는 좋은 기회(?)랄 수도 있었다.

"큰일입니다. 대원위께서 저리 되고 난 후 세상이 오히려 더 팍팍해졌습니다."

서광범이 젊은 혈기를 앞세워 거침없는 말을  토해 놓았다. 대원군의 언급이나 민씨척족들의 불만만 입에 담아도 자칫 화를 당할 수 있는 계엄시기였다.

"운양과 관계회복이 급합니다. 우리가 믿을 사람은 운양뿐입니다."

"운양과는..."

"지금 운양이 대세입니다. 조정의 권력이 그에게서 나온다니까요."

운웅렬이었다. 그는 윤치호의 아버지로 개화당에 비판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인물이었다. 윤웅렬도 김옥균의 성격을 모나게 본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윤치호는 훗날 자신의 일기에 윤웅렬의 김옥균평을 기록하고 있는데 대단히 비판(?)적이다.

- 무엇인가를 서두르고 따져보지 않는 성급함만 앞서서는 일이 될 턱이 없었다. (윤치호일기)

윤웅렬(1840-1911)은 아들 못지 않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서얼 출신이란 신분적 컴플렉스로 나름의 고통 속에 산 인물이기도 하다. 윤웅렬은 수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후 별기군 창설 멤버로 활동했으나 무슨 이유에서인지 김옥균과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하고 있었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윤웅렬은 아들 윤치호의 앞날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진로를 선택한 듯하다. 서얼의 한계를 아들세대에 물려주지 않고자 개화파에 한발을 담가놓고 또 한편으로는 개화당의 아슬아슬한 행보를 주시(?) 하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윤웅렬 윤치호가 모든 개화당이 초토화된 정변 후에도 살아남는 이유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윤공의 말이 맞는 듯하지만 운양이 대원위와 척진 상태에 우리가 그와 다시 손을 잡는 것은 모양이 그렇지요?"

이 말을 한 사람은 홍영식이었다. 홍영식은 개화당 인사들 중 박영효 다음가는 귀족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영의정을 두번이나 지낸 홍순목이었다. 홍순목은 아들이 정변에 참가한 후 자신의 집 대청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 인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