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의 시간적 공간은 1년 6개월여다. 이 사이 한양은 거의 무법천지였다. 좌우포도청은 도성안에서 연일 발생하는 살인사건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으나 별무 효과였다. 사건은 주로 민씩척족들의 대원군파에 대한 보복과 상대적으로 약자이면서 잠재적 대항세력인 개화파 인사들에 대한 공공연한 테러가 자행되어 사회는 공포의 도가니(독안)였다.

같은 시대는 아니지만 백주테러가 공공연한 현장을 직접 취재했던 자료가 있다.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니시무라도끼스케(1867-1894)의 취재수첩을 책자로 만든 갑오조선진(甲午朝鮮陳)이란 책자로, 일본에서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학회지 '군사'에 소개된 자료다. 이 자료를 소개한 '조재곤'의 언급을 소개한다.

- 서울에서 김학우(개화파 인사)를 만난 지 두달 무렵인 10월31일 그가 자객에 살해당한다. 도끼스케는 다음날 일찍 김학우의 집을 방문하여 사건의 현장을 보게 된다. 그가 묘사하는 김학우의 집은 세번이나 돌아들어가는 큰집안에 1칸 방을 쓰던 김학우는 시체가 되어 요를 덮고 병풍 뒤에 누워 있었다.

실내 곳곳에 피가 낭자하고 천정에까지 칼자국이 보였다. 사건 당일 밤 김학우는 두명의 손님과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8시 정도에 조선인 10여 명이 집앞에 찾아와 그중 한 사람이 대면을 청했다. 이에 김학우가 누구냐 묻자 자신은 전장(농장)을 지키는 사람인데 드릴 말이 있다며 대면을 거듭 청하자 김학우가 그들 앞에 나섰다.

대면을 청한 자가 김학우를 보고 큰절을 올리자 그의 옆에 서 있던 사내들 중 두명이 칼을 뽑아들고 돌진하며 김학우의 옆에 있던 손님 두명을 찌르는 것을 신호로 나머지 수하들의 칼에 김학우는 명을 접었다. 자객들은 현장에 칼집과 우산을 떨어트렸다. 도끼스케는 김학우를 개화당 중 일류의 인물로 평가하며 그의 죽음을 애석해 한다.

김학우는 법무협판으로 도성안의 죄수들을 재판하는 법원지원장이었다. 김학우는 일본에서 이미 도끼스케를 만난 경험이 있어 조선에 온 도끼스케의 취재대상이었다. 이런 인물이 일단의 무뢰배들에 의해 난자를 당해 비명횡사하고 있는 것이다.

살해방법이 대담하고 용감무쌍(?)하다. 마치 사기(史記)의 자객열전을 방불케한다. 농장관리원을 자칭하며 방문을 하고 상대에게 큰절을 하며 경계심을 풀게하고는 1진과 2진으로 나눈 시간차 공격은 살인을 직업으로 하는 무리들 아니고는 할 수 없는 행동이다. 조선후기에는 협객정신이라는 게 있었다. 협객은 조선팔도 곳곳에 출몰했다.

협객은 시골 향리에서도 무상으로 출현했다. 시골 공동체를 유린하던 양반토호들은 협객의 출현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한 시골을 무자비하게 갈취하고 농단하는 양반토호가 있으면 참다못한 공동체의 한사람이 나와 양반토호를 처단(?)하고 관가에 죄를 자청해 처벌을 받으면 시골공동체는 그 가족을 보살펴 주는 불문율이 있었다.

나라의 치안과 법이 엉망이다 보니 힘없는 백성들의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청부 살인업자들의 발호는 피할 수 없는 사회적 업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