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출범한 방원사가 간판을 내리고 1922년 일본기원이 설립된 44년 사이에는 적어도 10여 개의 유사 바둑 단체들이 명멸하며 20세기 영화롭던 일본바둑의 초석을 놓게 된다. 의욕적으로 출범했던 방원사가 단증 발급으로 기존 바둑 4대가문과 갈등을 하면서 일본 바둑계는 사가문(四家門 =방원사=단체난립)의 시대로 들어선다.

이와사키켄조, 나카가와센지, 이와사케이, 후루야오키사부로 등이 주축이 된 방원사와 가리나네쥰이치, 츠치야슈겐, 다무라야스히사 등의 사상회(四象會)의 분열 대립 경쟁구도는 일본바둑의 기초체력을 다지는 역할로 작용한다. 사상회는 본인방 슈에이가 자기집의 사랑방에서 출범시켰던 모임이다.

혹자는 슈에이와 슈호의 갈등을 김옥균이 중재로 해결했다는 전혀 검증되지 않는 말을 하고 그것이 한국바둑계에 넓게퍼져 유력신문의 지면에도 종종 반영되는 일도 있다. 슈에이와 슈호의 갈등은 분명 있었던 사실이지만 김옥균이 그들 사이를 화해시켰다는 것은 오해다. 이 두 사람의 갈등 관계를 봉합한 사람은 당시의 유력자 고토쇼지로(後藤象二郞)의 권유와 강권(?) 때문이다.

일본바둑계의 거성들의 갈등과 화해의 자리에 김옥균이 끼어든 것은 영광이나 그것도 정도껏이다. 필자가 알기로 김옥균은 슈에이와는 막역한 친분이 있었으나 슈호와는 일면식도 없어 그들 사이를 중재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았다. 그리고 슈에이와 김옥균이 최초 조우한 시간도 두 사람의 화해사건과는 맞지 않는다.

방원사와 사상회의 양립시대에 이와사케이, 노자와치큐쵸 등이 바둑동지회를 창설하며 일본바둑은 삼분된다. 난립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바둑동지회는 방원사의 적극적인 회유책으로 곧 해산되지만 이것도 오래가지 못한다. 방원사의 독단과 강권적인 운영은 내부분열을 일으켜 '육회회' 피성회' 중앙기원' 등 각종 바둑단체가 들쑥날쑥 어지럽게 생겨나 각자 도생의 길을 걷는다.

육회회의 멤버 중 '하시모토유타로' '하세가와아키라' 등이 훗날 일본바둑의 대들보로 성장했다. 피성회 멤버 중에는 세고에겐사쿠가 있다. 겐사쿠는 4대방원사 사장이던 히로세헤이지로의 독재에 불만을 품고 가리가네준이치와 이와사케이 등과 방원사를 탈퇴하고 세운단체가 피성회다.

피성회가 주목되는 점은 흑백호선(덤4집반)과 시간제한 그리고 오늘날 토너먼트 경기 시스템을 고안한 것이다. 이것은 겐사쿠나 준이치 등 실력으로 당대 최고였던 멤버들의 자신감과 연구욕구가 낳은 성과였다. 방원사와 사가문의 잔존 세력 그리고 일본바둑의 중흥을 염원하는 젊은 기사들의 헌신은 바둑단체의 이합집산을 야기했지만 그것은 하나가 되기 위한 진통이었다.

무엇인가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진통이 있기 마련이다. 일본바둑은 중앙기원으로 가통합을 한 후 일본기원이란 백년단체로 성장한다. 역사는 진통의 과정을 혁명이라 한다. 정동에 칩거한 후 바둑으로 날밤을 보냈던 김옥균의 시간도 바로 진통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