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당진에 산다. 인근에 있는 남양과 아산은 임오군란 이후 청군의 상륙과 일본군이 주둔한 역사적 현장이기도 하다. 당진 면천은 김윤식이 유배를 와 살았던 곳이다. 면천은 옛날부터 군(郡)으로 독립적으로 기능해오다 20세기초 행정구역 개편시 면으로 재편된 곳이다. 하지만 지금은 작고 초라한 동리에 불과하다. 김윤식은 한두 곳 유배지를 경유해 면천에서 10년간 유배를 살았다.

김윤식은 이 유배기간에 음청사, 속음청사 등을 집필한다. 면천은 당시 한양에서 불과 삼사 일에 불과(?)한 거리로 유배지 중에서 비교적 혜택을 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제주도나 흑산도를 전전한 면암 최익현 같은 인물에 비추어 보면 말이다. 김윤식은 역사 속에서 한순간에 자신의 인생의 행로를 결정 당한(?) 흔치 않은 인물이다.

김윤식은 이곳 면천에서 밤이면 글을 쓰고 간혹 인근에 사는 선비들과 바둑을 두며 소일했던 듯하다. 무수동(舞袖洞) 윤선비란 글도 이때 지은 것이다. 무수동은 당진읍에 있던 마을로 풍수지리상 학이 내려와 춤추는 형국이란 의미로 지금은 도시계획에 의해 흔적없이 사라졌다.

한양이 지척이지만 가지 못하는 몸은 지옥과 같아

밤이면 책을 읽고 혹간 오직 윤공과 바둑 두는 것이 즐거움이라

나라는 바둑판 위의 미생마로 흔들리건만

책임 있는 나라의 선비는 주책 없도다.

김윤식은 오경장과 원세개 등의 독단적 작전에 휩쓸려 졸지에 대원군을 실각시킨 주모자이자 대원군을 납치한 기획자로 역사에 남는다. 김윤식은 개화기 당시 신진 관료로 개화파이면서도 친청파와 친일파를 모두 경험하는 정치적 행보를 하게 된다. 이 경험이 김윤식이 김옥균과 조금 다른 면이다.

어쨌든 청군의 조선 진군은 일대 파란을 일으킨다. 파란은 임오군란보다 더한 것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당시의 일본과 중국관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1871년 청일수호조약을 맺어 상호간의 외교사절의 교환과 영사의 주재, 그리고 영사재판권의 인정 등 이미 국가간의 대등관계를 확립한다. 이제껏 일본과 중국간에 성립해온 불평등 최혜국 관계를 떨쳐버린 것이다. 일본은 임오군란이 일어나기 10년전에 조선이 아직도 속방관계를 벗어나지 못할 때 대중국으로부터 완전 독립(?)을 성취한 것이다.

일본은 이때 중국과 중요한 작업 하나를 시도한다. 그것은 일본의 대중국 외교조약문서에 조선의 독립(?)을 끼워넣은 것이다. 일본이 청국의 속방에서 떨어진 만큼 조선도 중국의 속방이 아니라는 내용이다. 일본의 대외교 전략은 이렇게 심모원려가 깊었다. 공작외교 공작정치의 백미(?)라 하겠다. 이런 외교술에 견줘 조선의 외교력은 한심하다. 임오군란 직후 조선이 청국과 맺은 조약이 그걸 여실히 증명한다.

1882년 조청간에 체결한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전'은 아직도 미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조선의 몰골을 보여준다. 청국의 북양대신인 이홍장과 조선의 군왕이 대등한 관계에서 문서가 체결된 것이다. 이것은 청나라의 일개 대신과 조선의 군왕은 동격이라는 지난 수십 세기를 내려온 관습을 극복 못한 조선의 한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