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비가 임오군란을 맞아 궁녀 한명과 먼 집안사람인 민응식의 도움을 받아 겨우겨우 목숨을 연명하며 이천을 거쳐 충주로 도망길을 나서고 있을 때 청나라는 일본정부로부터 조선에 군란이 일어났음을 알게 된다. 그것은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받은 한 통의 전보였다. 전보는 외교 통고문으로 일본이 조선에서 발생한 변란으로 일본인이 사망하고 다치는 사건이 발생하여 부득불 군함을 파견하여 대응키로 했으니 청국도 조선의 사정을 살필 필요가 있을 것이란 내용이었다.
이 전보를 받은 총독참모인 '장수성'은 황실에 직보를 하는 한편 마침 영선사로 천진에 들어와 있던 조선사신 김윤식과 어윤중을 불러 조선의 사정을 묻게 된다.

역사는 우연이 필연이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김윤식의 경우가 그런 경우다. '천진'에서 날벼락 같은 조선의 사정을 들은 김윤식은 일본보다 차라리 청국이 조선에 파병을 하여 국왕을 보호하고 반군을 퇴치해 줄 것을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장수성의 질문은 하나의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그리고 갑자기 당한 이런 환경에서 김윤식도 마땅히 할 수 있는 말도 없었을 것이다. 김윤식의 일기인 속음청사에도, 그의 활동공간이 임오군란의 처리와 맞물려 지극히 제한적인 것을 알 수 있다. 김윤식은 천진에서 지역 유력자들과 바둑을 두며 소일하다 조국에 닥친 변고를 듣고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난리가 났다면서요?"

"난리가요? 어디에요?"

"한양에 변고가 터진 모양이요. 대원위께서 일을 치신 모양인데..."

"대원위께서요? 설마...?"

김윤식과 어윤중이 나눈 대화로 미루어 이들은 조선에서 벌어진 임오군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김윤식과 어윤중은 이 소식을 듣고 영선사로의 활동을 접고 곧바로 조선으로 돌아갈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가 청군의 파병을 따라 귀국하게 된다.  

청국은 며칠간 숙고 끝에 북양함대 사령관인 '정여창'에게 군함 3척을 조선에 파견하라는 지시를 내린다. 그와 함께 일본에 함대제독 '마건충'을 위시한 3척의 군함을 조선에 파견했다는 전통을 날린다. 그리고 친절하게도 일본공사관과 거류민의 보호도 자처하고 나선다. 이뿐만이 아니다. 청국은 해군의 파견과 동시에 광동제독 '오경장'으로 하여금 육군 3천명을 거느리고 조선에 진군할 것을 명령한다. 김윤식은 바로 이 오경장을 따라 귀국길에 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김윤식의 행보는 지극히 수동적이다. 그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미 거대한 청국의 대(對)조선책략이란 밑그림 속에서 김윤식의 의견은 그저 참고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청국의 대조선책략의 일환으로 대원군을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에 소극적으로 동조(?)를 하는 정도였다. 이 일련의 사건의 흐름을 놓고 사가들은 민비가 김윤식에게 사람을 보내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였고 덧붙여 대원군 제거 공작을 했다는 논거에 이른다. 한마디로 '문의망상'이다. 문의망상은 이미 되어 있는 일을 놓고 이런저런 궁리를 한다는 의미다. 작문을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이 과정에 놓여 있는 김윤식을 기억해야 한다. 김윤식은 김옥균과 뜻을 함께 하던 개화파 인사로 김옥균 못지않은 바둑마니아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