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험, 그래도 대원군께서 일개 청의 장수에게 호락호락 하시겠나?"

"허? 이 양반, 깝깝하시네. 조선이 뭡니까? 청나라의 개가 아니요?"

"개....?"

"청국이 조선의 주인이라 그 말이요. 그건 당신네 양반들이 알려준 말 아니요?"

"끄응!"

"왜? 화나시요? 개가 어떻게 주인말을 무시합니까? 청나라 장수 오경장이 어리기는 하나 주인집 아들 아니요? 아하하하."

"하하하."

패랭이를 쓴 자의 말에 주위의 모든 사람이 웃음보를 터트렸다. 대원군의 권위(?)를 들고 나온 민응식을 물정 모르는 양반으로 치부하고 놀리고 있는 것이다.

"허험."

민응식은 자리를 떴다. 조금 더 지체했다가는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를 일이었다.

"하하, 개도 안 물어가는 양반놈들이라더니 저 내빼는 꼴 좀 보게? 하하하."

"허허 그래도 헛기침에 팔자걸음은 여전하네. 하하하."

민응식은 따가운 뒤통수를 참으며 운의 주막을 나와 충주목으로 들어갔다. 이 시대 충청감영은 공주에 있었고 충주는 정3품관 목사가 주준하고 있었다. 충청감영은 공주 충주 청주를 돌아가면서 설치되었으나 조선 오백년 동안으로 따지면 청주 충주 공주 순으로 설치기간이 있었다. 공주는 불과 80년 정도니 충청감영의 대명사는 청주라 해야 맞다. 오늘날 충청도란 이름도 충주와 청주의 첫자를 딴 것이다.

충주목에는 계엄이 내려 있었다. 목사 이하 충주목에 달린 18관의 관장들과 충청병마사 휘하의 모든 군졸들은 정위치에서 비상한 시국을 대처하고 있었다. 민응식은 되도록 관아 주변으로 접근하여 소식을 듣고자 했다. 조장의 소식은 관아가 가장 빠를 것이란 생각에서였다.

"언제까지 이 상태가 계속된다냐?"

"글쎄 말일쎄. 그걸 내가 알겠나 자네가 알겠나? 다 대원위 분부에 달렸지."

짝을 이루어 순찰을 돌고 있는 군졸들이 누구 눈치를 볼 것도 없이 시국얘기를 나눌 정도록 세상은 어수선했다. 민응식은 두 귀와 눈을 한양으로 집중했다.

"청군이 충청도 해안에 상륙했다지?"

"남양에 상륙한 모양이야. 관찰사가 그쪽으로 영접을 갔다지 아마?"

민응식은 이때 청군이 한양으로 진군한 것이 아니라 충청도 해안에 상륙한 것을 알았다. '남양', 경기도 화성을 말하지만 조선말에는 남양현으로 충청도 홍주목사의 지휘를 받는 곳이었다.

"청군이 곧바로 한양으로 올라가나?"

"글쎄 말야. 한양에는 나랏님이 계신데 아무리 청군이라 해도 그러겠어?"

"아냐. 떼놈들 무도한 거는 왜놈들보다 더하니 한양으로 들어가고 남을 거야."

군졸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 민응식은 그들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