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 그건..."

"호호 아니예요. 지금 도성에서 나를 욕하고 저주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내가 낭비벽이 심했던 탓도 있다고 보니 크게 화낼 일도 아니지요."

"마마?"

"다 나의 불찰이고 잘못이지요."

민비는 막힌 여자가 아니었다. 무엇인가를 집요하게 우기는 성격도 아니었다. 그녀는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사치를 좋아하면서도 누군가 자신의 그것을 지적하면 쉽게 알아 듣고 그 사람을 칭찬도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러나 민비는 사치와 방탕을 죽는 순간까지 버리지 못했다.

"마마 그리 생각해 주시니 황송하옵니다."

"민진사는 충신이군요. 충신은 간언을 하고 간신은 교언을 한다지요? 호호, 그건 그렇고 바깥 세상의 소식이 궁금하군요?"

"소신이 나가 바깥 세상을 염탐해 올릴까요?"

"그리좀 해주세요. 충주목에 가깝게 가면 보다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을 테지요. 그 중 궁금한 것은 청군이 도성에 들어왔다는 말인데...그 말을 잘 살펴주세요."

민비는 청군의 도성 진입을 궁금해했다. 청나라가 군란에 개입을 하고 직접 군대를 파견했다면 이 사건은 민비에게 불리할 것이 없는 일이랄 수 있었다.

민응식은 민비의 명을 받고 충주목으로 들어갔다. 민응식은 불과 2년 후 충주목사를 역임하게 된다. 물론 민비를 지근에서 모셨다는 공(?)을 보상받은 것이지만 지금은 그저 꼬리빠진 양반의 몰골에 지나지 않았다. 민응식이 충주 근방에서 청군의 소식을 들은 것은 충주 길목에 있는 원(院)이었다. 원은 여행객들이 무상으로 붐비는 곳으로 정탐 장소로는 최적이랄 수 있었다.

"임자들 도성 소식들었는가?"

"떼놈들 들어온 거 말이지?"

"그 거 아니면 뭐가 궁금하겠나?"

"하긴 떼놈들이 수천 명이 무장을 하고 도성으로 밀고 들어왔다더군. 장수가 '오경장'이라던가 뭐라던가?"

"맞아. 보통 시건방진 놈이 아니라더군."

원의 넓은 마당을 차지하고 앉은 여행객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하고 있었다. 풍문은 상당한 수준의 정보(?)를 담고 있었다. 발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던가.

"대원군께서 보고만 있지 않으실 텐데...?"

민응식이 짐짓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하하, 이 양반 물색 없기는...대원군이야 조선에서야 대원군이지 청군에 무슨 힘을 쓰겠소이까? 괜히 청군에 봉변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요."

머리 위에 패랭이를 쓴 보부상 차림의 사내가 민응식을 아래위로 꼬나보며 쏘아부쳤다. 양반의 체모는 이미 땅에 떨어진 시대였다. 양반도 힘깨나 쓰는 하인들 몇을 대동하고 골목(?)을 누빌 때나 양반이지 작금의 민응식의 모습은 양반을 거론할 입장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