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모나고 하늘은 둥글다.

땅과 하늘 사이에

이십팔수(蒐) 늘어섰다.

사철 이십사절기

밤과 낮을 왕래하네.

-이유원 바둑가(歌)

개화파의 거당적인 청계계곡의 단합대회가 끝난 며칠 후 9살난 왕세자 '척'의 관례식이 행해졌다. 민비의 독자인 척은 민태호의 11살된 여식과 책빈례(冊嬪禮)를 올린 것이다. 민태호는 민씨척족의 유력자로 왕실과 사돈이자 차기 군왕의 장인으로 반석과 같은 위치에 선다. 민비가 민태호를 사돈으로 선택한 이유는 두말할 필요없이 민씨 세도정치의 영속을 꾀한 포석이다.

책빈례 이후 궁안에서는 수일간에 걸쳐 향연이 벌어졌다. 민비는 이 축하연을 빌미로 막대한 정치자금을 끌어모았다. 대신들은 물론 도성안의 상인들과 토호들 그리고 지방 관장들에게까지 손을 내밀어 궁안으로 들어온 물품이 산더미 같았다. 민비는 일본 공사관에까지 선물을 요청하여 작은 증기선 한 척과 산포(山砲) 두 문을 받아내어 조정에 내놓기도 했다.

민비의 시대였고 민비의 전성기였다.

민비가 정적 대원군을 운현궁에 유폐(?)하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유림의 준동(?)까지 막아놓고 득의만만하던 때가 바로 이때이다. 민비는 무당들과 가객 그리고 기녀들을 궁으로 불러들여 굿과 가무 등을 즐긴 것도 이 시기다. 민비의 행태는 거칠 것이 없었다.

1881년과 1882년은 극심한 한발과 가뭄으로 농사가 작파되고 특히 역병이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수많은 백성들이 헐벗고 병마에 시달리던 때였다. 이런 난세를 맞아 팔도 곳곳에는 도적이 들끓고 활빈당이란 대규모 도적집단이 출몰하여 나라의 치안이 말이 아니었다. 활빈당은 지역 토호를 강탈하고 관아를 습격하여 곡물을 탈취하는 등 단순 도적의 수준을 넘어서 조선의 치안에 도전할 정도였다.

이동인이 실종된 시기도 이때였다. 이동인은 3차 수신단의 발행을 수일 남겨놓고 유령처럼 사라진 것이다.

"이 무슨 말이냐?"

"저......"

"뭘 꾸물거리는 게야? 그 자가 사라지다니?"

군왕은 유람단 책임자로 선정된 이원회를 닥달했다. 그러나 이원회도 전혀 아는 것이 없기에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하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삼일 전부터 전혀 종적을 알 길이 없나이다."

"집에도 없단 말이냐?  몸이라도 좋지 않은 거야? 뭐야?"

군왕은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일국의 책임 있는 관료가 근무처에 삼일씩 연락두절이라는 것은 엉뚱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