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 사람들은 장기(碁)를 혁(奕)이라 한다. 장기판은 4각형으로 땅을 상징한다. 판의 직각은 도덕적으로 공평하고 고결함을 의미한다. 두 진영의 말은 황과 흑으로 음과 양을 뜻한다. 판 전체에 흩어진 말들은 천체를 나타낸다.

조셉 리덤은 바둑과 장기를 하나로 보고 논지를 전개한다. 고대의 중국에는 다양한 바둑 장기 두는 법이 있었다는 것이다. 리덤은 다양한 형태의 전쟁게임으로 바둑 장기의 속성이 같다고 본 듯하다. 리덤은 바둑과 장기를 모두 기(碁)로 통일하여 쓰고 있다. 바둑 장기가 승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미래를 예측하는 마술(점복을 말하는 듯)에 목적이 있었다고 본다. 이것이 적어도 6세기까지의 바둑 장기의 모습이란 것이다.

- 중국은 대우주에 대한 지배적인 음양론이 존재하고 있었기에 복점술의 전(前) 게임이 고안된 것이다. 점성술의 일종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군사적인 상징성을 통속화하여 바둑 장기를 대했다. 충분한 전투적 요소가 있었던 탓이다.

리덤의 정리는 일본학자 '소천탁치'의 연구에 못지않은 깊이를 보여준다. '소천탁치'가 바둑의 기원에 연구의 초점을 마추었다면 리덤은 문화라는 측면에서 바둑에 접근한 서양학자다. 동양의 학자들을 부끄럽게 만든 사람이라 하겠다.

한 판의 바둑이 종국을 고하려 할 때 김옥균이 하고 싶던 말을 꺼냈다.

"이공을 조금 이해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 자를 이해하라고요?"

"그렇소이다. 우리와 공부가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 생각하시고 넓고 깊게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하하, 나는 유가와 불가의 공부가 다르다 생각지는 않소이다. 승려들은 만법귀일하다 하더이다."

김홍집이 만법귀일의 공안을 거론하며 이동인에 대한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다. 김홍집은 이미 이동인을 결단할 결심을 한 후였다.

"김공?"

"공자도 부처도 의를 버리면 뭐가 남겠소이까? 이 판이 끝나면 나와 나 한 판 두시지요."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이 다가오던 1881년의 조선은 한마디로 폭풍전야였다. 일본 미국 러시아 등의 외교적 침탈은 차치하고 사분오열된 조선의 제정파의 물밑 갈등은 도를 넘고 있었다. 갈등은 시대의 인물들을 출몰시키기도 했고 침몰시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