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우와 이규완의 바둑은 개화파의 단합보다는 조일간의 바둑대국이란 자존심 싸움으로 더욱 뜨거웠다. 참석자들은 모두 이규완의 패배를 아쉬워했다. 그러나 이규완의 실력이 이토우에 못지않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그들의 큰 위안거리였다.

"역시 일본이 개화를 통해 발전했다고는 하나 한번 해볼 만하다니까."

"암, 우리 조선도 늦지 않았지.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갈고 닦으면 되는 게야."

"그럼요. 자신감을 갖고 나가면 됩니다. 조선사람 모두가 한마음이 된다면 일본뿐 아니라 미국도 러시아도 못따라 잡을 거 없지요."

기연(바둑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한마디씩 했다. 이규완의 선전(?)은 뜻밖의 효과를 보이고 있었다. 이토우와 이규완은 다른 사람들을 상대로 지도대국을 펼치고 김옥균 또한 다른 동지와 바둑을 두며 유쾌한 만담으로 장내를 즐겁게 했다. 박영효는 그의 저서에 김옥균의 유쾌한 삶을 기록한 바 있다.

- 김옥균은 재치가 있는 사람이다. 그가 한번 말을 꺼내면 끊임이 없고 주변 사람들은 그의 언변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김옥균은 서화에 능했고 바둑이 탁월했다.

박영효가 말한 김옥균의 탁월했다는 바둑 기력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다. 필자는 수년전부터 바둑의 역사에 관심을 갖고 '바둑사'를 추적하면서 김옥균의 기력(棋力)을 탐문했다. 김옥균은 자신의 일기인 '갑신일록'이나 갑신정변의 사건 기록일지인 '추안급국안' 등에 바둑과 관계된 기록을 남긴다.

김옥균은 '본인방 수영'과의 대국기보도 남기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바둑실력을 가늠하기는 힘들다. 김옥균의 연구는 '금병동'이 최고다. 그러나 금병동의 연구에도 김옥균의 바둑의 근거는 별로 없다. 추후 밝히겠지만 김옥균의 기력은 요즘의 기력으로 아마5단 정도가 아닌가 한다. 아마5단의 기력은 당시로는 상당한 경지다.

"고균, 이리 시간만 끌어서 되겠나?"

유대치가 김옥균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동인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할 수 없지요. 말을 물가에 끌고는 와도 물을 억지로 먹일 수는 없는 거 아닌지요."

"그래도 화해를 시켜야 하네."

"억지춘향으로 말입니까?"

"아까보니 이조년이 작정을 하고 온 듯하이."

"저도 그게 마음에 걸립니다."

김옥균이 장막 안을 살펴보며 말햇다. 장막 안에 이조년은 없었다. 이동인은 무엇이 그리 좋은지 다른 사람들과 큰소리를 내며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