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 바로 출발할 듯합니다."

이동인은 유대치에게 깍듯했다. 유대치는 개화당이 믿고 의지하는 정신적 존재였지만 이동인에게 있어 유대치는 불교적인 존경의 대상이기도 했다.

"이번 출행이 중요하오. 유람단을 따라가는 많은 인재들이야 말로 조선의 미래라 그 말입니다. 그들의 눈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조선의 살길이지요."

"조선이 살길이라고요?"

"그렇소. 이공 그보다 좋은 방법 있소이까?"

유대치가 다시한번 신사유람단의 발행의 의미를 되새겼다. 이동인이 별다른 말없이 수긍을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이공?"

유대치가 이동인의 한손을 잡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이동인은 대답대신 유대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공에게 사과를 하시오."

"사과를요?"

"선가는 말이 필요없지만 유가는 그렇지 않지요."

유대치는 이동인과 김홍집의 갈등의 봉합이 개화파의 가장 큰 일로 보고 있었다. 김옥균과 바둑대회를 연 것도 그 두 사람을 화해시키기 위한 방편이었다.

"하하, 선생님, 김공이 그 정도도 받아 넘기지 못한다면 대장부가 아니겠지요. 저는 김공이 그리 졸장부는 아니라고 봅니다."

이동인은 아직도 사태파악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동인은 앞에서 언급한 바 있듯 미스터리한 인물이다. 부산 범어사 출신의 승려로 지명(知明)이란 법명을 사용했고 한양에 올라와 봉은사에 적을 두었다는 정도가 알려진 전부다.

이동인이 개화에 뜻을 두고 정치일선에 서서 비상(?)한 활약을 한 것은 맞는 듯하다. 그러나 이동인은 생각보다 뛰어난 불법의 소유자도 헌신적 애국자로도 보이지는 않는다. 범어사나 봉은사 같은 전통의 사찰은 사력(寺歷)을 갖추고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도 두 사찰의 승적명부에 이동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동인이 조선포교의 일환으로 부산에 들어와 있던 일본 '정토종'에 정식으로 입교하여 '엔신'을 스승으로 모신 것도 자존심으로 하늘을 찌르는 선종(禪宗)의 그것과는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어떤 학자는 아예 이동인을 가공의 인물로 판단한다. 일본이 조선 침투를 위해 파견한 공작원이란 것이다. 그처럼 이동인의 활동반경이 조일간의 외교전선에서 아슬아슬했다는 반증이다.